쉬었음 210일, 결국 다시 병원으로

쉬었음 기간이 내게 준 것

이곳은 퇴사 후 210일간의 '쉬었음'을 마치고 취업한 요양병원이고,

현재는 휴계시간이다.(요양병원 나이트 전담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나는 어쩌다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1999년 1월 4일,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2016년 여름 내게도 수시원서 접수 기간이 다가왔다.

하고 싶은 게 없던 나는 가능한 선택지 중, 가장 취업이 잘 된다고 하는 간호학과를 선택했고,

놀랍게도 9년째, 그 선택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9년 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대학병원은 4개월 만에 퇴사했고,

이후 들어간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13개월의 계약기간을 채우고 나왔다.

감사하게도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 정규직 제의를 받았지만,

나다운 일을 찾겠다며 당당히 거절하고 나왔다.

그렇게 쉬었음 기간을 가지게 됐다.

6개월 넘는 쉬었음 기간을 거치며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들을 해봤다.

그런데, 나다운 일은 개뿔..ㅋㅋ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했던, 병원의 밤을 지키고 있다.

일이 힘들진 않지만, 병원이 싫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을 탈출해서 나다운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참 행복할 텐데..

한편으로는, 현재의 삶에 만족할 줄 모르는 내가 아쉽다.

출근하면 못 볼 거라도 본 듯, 후다닥 해야 할 일들을 해치운다.

무언가 더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짜증부터 난다.

시간이 갈수록 일이 귀찮아진다.

분명 이곳에서도 일하는 의미를 느끼고 만족할 수 있을 텐데..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른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다운 일을 하더라도 만족은 잠시 뿐이고,

또 다른 무언갈 바라고 있지 않을까?

잠깐.

지금 상황에 만족해 버리면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아.. 나는 '만족'과 '안주'를 헷갈려하고 있는가 보다.

이래서 나는 글을 쓴다.

제미나이가 알려준 만족과 안주의 차이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상황과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걸 깨닫게 된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글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도와줬다.

군대에서 썼던 일기는 통제된 생활 속에서 자유를 줬고,

대학병원 다닐 때 썼던 블로그는 퇴사할 용기를 줬고,

퇴사 후 '쉬었음'기간에 썼던 글은 조회수와 관심으로 희망을 줬다.

그래서 그런가..?

파블로프의 개가 침을 흘리듯, 나는 힘들 때 글을 쓴다.

'쉬었음'기간에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읽어보니 어깨에 힘이 뽝!!!! 들어가 있다.

분명 그 글을 쓰고는 승모근이 딱딱해졌을 거야.ㅋㅋ

그렇게나 힘을 주고 썼으니,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될 수밖에..

이번엔 어깨에 힘을 빼고,

학창 시절 나이 많던 선생님들이 썰렁하게 말했듯이 진솔하게 쓰자는 다짐을 한다.

('진솔이는 이름처럼 진솔하게 살아야겠네! 하.하.하.')

쉬었음 기간을 가지기 전에는 내 삶을 내가 아닌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힘이 셌다.

하지만 쉬었음 기간을 통해 나 대신 내 삶을 차지하고 있던 누군가에게 주먹 한방을 날렸다.

주먹 한방에 뭐가 바뀌겠냐 싶지만, 적어도 이놈은 밟으면 꿈틀 하는구나 했을 거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내 삶을 차지할 때가 있지만,

그 주먹 한 방 덕분에 나의 삶을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신의 삶은 누가 살고 있나? 당신이? 아니면 부모님이? 사람들의 시선이?)

결국, 앞으로 해나갈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이

나답게 잘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힘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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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경험을 통해 연결될 때, 더 단단해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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