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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발 Jan 23. 2022

욕망의 신은 냉정하다

<돈을 떠받드는 대원들 (내가 그렸지만 참.. 일차원적이다..) >


살아생전에 팬데믹이라는 말을 일상어로 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빌 게이츠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몇 년 전부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팬데믹이라고 예견했다는데 나는 그 사실도 1년 전, 뉴스를 보고 알았다.


재택근무, 마스크의 일상화, 백신 접종 등 팬데믹 시대의 뉴 노멀은 얼추 적응했다. 그런데 팬데믹 머니가 만든 후폭풍에 내 삶이 흔들리고 있다. 안 그래도 벼락 거지였던 나는 곧 재만 남아 소멸될 것 같다. 동트기 직전, 바다 위에서 눈뜬 뱀파이어가 이런 기분일까. 곧 타 죽을 걸 아는데 피할 곳도 없다는 걸 직감했을 때의 공포와 절망 말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평생을 도시 빈민으로 살아온 나는 벼락 거지의 떨거지쯤 된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대출을 풀로 받아도 나머지 차액이 없어 집을 살 수가 없었다. 지방 소도시라면 가능했겠지만 서울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선택지가 서울과 서울 인근의 경기도 몇몇 도시 밖에 없었고,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신용대출도 받지 못하는 데다가,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다는 고용의 불안까지 겹쳐 내 인생에 집은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래도 그때는 간헐적으로 집 없는 설움을 느꼈을 뿐, 지금처럼 집 없는 공포가 매일 엄습할지는 몰랐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팬데믹이 만든 역대급 돈잔치는 집값에 불을 붙였다. 집값이 오르면 전세금도 따라 오르는 건 당연한 이치다. 서울의 빌라촌을 떠도는 벼락 거지인 나는 지난 5년 간 두 번 이사를 했다. 첫 번째 이사할 때는 생각보다 더 많은 액수의 대출을 받아야해서 이자 부담이 커졌고, 두 번째 이사할 때는 계약과 동시에 계약 만료 시점이 두려워졌다.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나. 내가 살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계약 만료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밤마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뒤척일 때가 많다.


팬데믹 머니가 주택시장에 불을 붙였다면 주식과 코인 등 자산시장에는 폭탄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영혼의 머리채까지 끌고 와서 만든 돈이 자산시장으로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벼락 거지가 됐던 사람들은 공포심과 좌절감을 기폭제로 한풀이라도 하듯 돈을 쏟아부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토리 알밤 수준의 종잣돈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누구는 열 배를 벌었다더라. 누구는 수억을 남겼다더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들뜨기도 했다. 희망은 순식간에 욕망으로 바뀌었고, 오로지 그 욕망에 충실했다. 10년 간 모은 적금을 털고, 가족론을 받고, 매달 월급의 반 이상을 투자해 주식을 샀다. 누군가에게는 귀여운 수준의 돈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전재산인 돈이 주식 시장으로 넘어갔다.


전설적인 투자자의 책을 성서라도 되는 것처럼 신중하게 읽었고, 유명한 유튜브며 팟캐스트를 매일 찾아들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복음처럼 마음에 새겼다. 평생 무신론자인 나에게 돈이라는 신이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가난을 핑계로 재테크에 무지했던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는 뭔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냥 좌절하지만은 않았다.


작년 가을. 욕망의 신이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준의 테이퍼링이 가시화되면서 내 재산도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 반복했다. 그런데 10만큼 사라진 돈이 8만큼만 돌아왔다. 그게 몇 차례 반복되면서 원금의 절반 가까운 돈이 없어졌다. 욕망의 신을 모신 지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현재, 체감상 지하 10층까지 온 것 같은데 어디까지 더 내려갈지 알 수가 없다.


돌아보면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경고했던 상황이다. 무지한 욕망 덩어리였던 내가 그 말을 외면했을 뿐이다. 지금 나는 벼락 거지의 떨거지였던 시절보다 더 가난해졌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책을 강구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고등학교 시절, 차비가 없어서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한 적이 있다.  대학생 때는  졸업앨범비가 아까워 앨범을 사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주변 지인을 통틀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쉽게 말해 내가 제일 가난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나름 즐겁게 살았다. 돈이 없어서 못하는  있었지만 돈이 없어도   있는 일도  많았으니까. 지금은 다르다. 물론 나이가 들다 보니 안정이 최우선 순위가 되기도 했겠지만 지금의 가난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능력자가 되고,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다 보니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르렀다.


어떻게 보면 나는 팬데믹 시대를 살면서 자본주의에 눈을 떴다. 그전까지는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게 삶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활비만 있어도 나름 안락함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의 냉혹함과 위엄 앞에 나의 즐거움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나의 존재도 희미해지는 것 같다.


어차피 욕망의 신이 내 편이 되어줄 리는 없다. 돈을 신격화 한 건 공포에서 비롯된 내 생각일 뿐이고, 돈은 애초에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자기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가서 흩어지고 모이고 반복할 뿐이다. 문제는 그 공포심이 내 일상을 마비시켰다는 점이다. 내가 평생 가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해도, 그 생각 때문에 매일매일 불행하게 산다면 그게 나한테는 가장 최악의 상황일 테니까. 돈을 벌 궁리는 하되 그 생각에 잠식되지 않아야겠다. 그래야 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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