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역사
사람은 계속해서 싸운다. 난 직접 못 봤지만 유아들도 제한된 자원에 대한 소유의식이 생기면 싸운다고 한다. 남자들은 학창 시절 주먹질을 잘하는 학생이 그 무리의 주도권을 잡는 경우가 많았다.
성인이 되면 달라질까? 성인이 돼서 몸싸움을 하면 물론 법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승률도 낮으며 잃어버릴 게 너무 많은 최악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편엔 잘 싸우면 좋겠다 라 생각한다. 비록 사회에서 조용히 평화를 원하고 이성적 인척 살아가지만 이 평화를 구걸하고 있는 스스로의 마음 깊숙이엔 마초적인 자아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남학생들은 태권도장을 가곤 한다. 내가 어릴 적엔 태권도와 합기도가 유행이었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합기도장을 다녔었다.
사실 정말 가기 싫었다. 낙법을 배우는 과정이 너무 어지러웠고 무엇보다 겨루기가 싫었다. 격투기는 단체운동이 아니다 보니 승패의 책임이 분명하다. 승자는 기쁘고 모든 영광을 다 가지지만 패자는 패배의 괴로움에 휩싸인다.
나의 아버지는 나완 전혀 다른 성향과 체구를 가지셨고 어릴 적부터 나의 성향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난 매번 육체적 투쟁을 해야 하는 작은 소굴에서 도망쳐 나만의 세계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절대 체육관을 그만 못 두게 하셨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작은 아마추어 대회도 나가보았다. 첫 상대는 나보다 훨씬 작은 아이였는데 딱 봐도 동생 같았다. 초등학생은 한 살 차이만 나도 차이가 많이 나서 첫 상대인 상대의 아기자기한 공격을 그저 발로 밀어내며 승리했었다. 이겼지만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
두 번째 상대는 나보다 훨씬 키가 컸는데 기억에 남는 건 그 상대가 시합 전에 나한테 잠깐 일어서보라며 내 키를 가늠하더니 알겠다는 듯 가벼운 인사(?)를 하며 돌아갔다. 어린 나이에 난 이 친구의 의도를 마음에 크게 담아두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합 후 상대의 공격 패턴이 매우 희한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발차기 위주의 공격이 대부분이었던 시합에 상대는 시합하자 달라붙더니 나를 던져버렸다. 발차기만 생각했던 나는 전혀 예산치 못한 공격에 당황했고 그렇게 나는 패배했다. 뭔가 억울했지만 바보 같은 나는 그 영악한 상대에게 다음에 또 보자 라면서 친절하게 인사했다. 나의 아버지가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중학생이 된 후 학업에 집중하라며 체육관을 그만 보내셨다. 그 당시 드디어 체육관을 안 가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체육관 대신 학원을 가야 됐지만 적어도 그곳에선 강제로 몸싸움을 할 필요 없었다. 대신 영악해지기 시작한 작은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