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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퇴근 후 무인매장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

by 라바래빗

회사 퇴근 후 무인매장에 가곤 한다. 아니, 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청담이 육아에 신경 써야 할 시기이기에 무인매장 청소에 알바를 쓰고 있다.


직장인 부수입으로서 완전한 자동화가 가능할 듯 보이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어 일주일에 1~2번 정도는 무인매장에 들르고 있다.



가게 정리를 위해서


무인매장은 주기적으로 가게를 정리해 주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직원 없는 다이소.

우렁각시처럼 가게에 와서 상품들을 다시 진열하고 사라지는, 닌자 같은 정리 스킬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무인 매장인지라 가게에 오래 체류해 있으면 매출에 영향이 간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



사람들은 무인가게에 주인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찾아온다. 편의점보다 좀 더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같은 예상과 달리 매장 주인이 가게 정리 차 몇 시 간 가게에 상주하는 경우, 사려던 물품도 안 사고 나가시곤 한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제일 피해야 하는 시간대는 퇴근 후.


퇴근 후는 제일 큰 매출이 나오는 시간대이기에 오히려 매장을 정리하려면 아침 시간에 가야 한다.

그러나, 청담이 기저귀 갈아주고 출근 준비하는 것만도 빠듯하기에 부득이 퇴근 후 무인매장에 들르고 있다.



공기가 시원하고 아이스가 맛있어요


퇴근 후 무인매장에 들르면 포스트잇들이 붙어있다.

이날은 꼬마 손님이 가게에 다녀갔나 보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라 에어컨 나오는 가게 안으로 피신 오는 손님들이 계신데, 귀여운 꼬마 손님이 아래와 같은 포스트잇을 남겨주었다.


"안에 공기가 시원하고 아이스크림이 맛있어요!"


꼬맹쓰 고객님의 극 사실주의 묘사.

별것 아닌 내용 같아 보이지만, 이런 포스트잇을 받게 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가게를 치우는 동기부여를 받는달까.


아무튼 너무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지 않게 잘 피신했기를.



울지 말아요 안 망할게요


이제 운영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단골손님들도 생겼다.

청담이 출산 시즌 당시 정신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가게 관리에 소홀했던 적이 있다.


당시 문구·완구나 아이스크림, 간식류들의 재고를 채우지 못했었는데, 물류가 많이 사라진 걸 눈치챈 아이가 이러다 가게 망하는 건 아닌지 걱정 어린 포스트잇을 남겨주었다.


"망하는거 아니됴?ㅠㅠ 제 최에 아스크림 집인데 ㅠ"


출산이라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지만, 자주 찾아와 주는 꼬마 손님에게 너무 걱정 끼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항상 이런 포스트잇에는 안심시키기 위한 답글을 달아주고 있다.


힘들더라도 회사 퇴근 후 지친 몸을 끌고 무인매장으로 향하는 이유이기도. 진심 어린 소통을 위해서는 알바를 쓸 수 없는 영역인지라 내가 직접 답글을 달고 있다.



이러니 무인매장에 갈 수밖에


무인매장에 찾아와 주시는 손님분들과 "포스트잇"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인수하기 이전의 가게는 소통이랄 게 없는 공간이었는데, 꾸준히 답글을 달다 보니 무유인(?)과 같은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기다려주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에, 퇴근 후 무인매장에 갈 수밖에 없는 직장인 라바의 하루.


하루하루 그들의 부름에 답하다 보니 미루는 습관을 조금씩 없애나가고 있다.


물론 무인 매장에서 벌어들이는 직장인 부수입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루는 습관을 없애게끔 해주는 고객님들의 관심과 부름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조금씩 무인매장 속에서 나 자신을 바꾸어 가고 있다.



나만의 삶, 나만의 재테크여행

열심히 말고 꾸준히 되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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