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기대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불행하다

by 라바래빗

요즘 회사 선배의 표정이 부쩍이나 안 좋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본인조차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상태. 그렇게 여러 차례 질문을 던져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선배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상대방에게 기대한 만큼의 무언가가 돌아오지 않음에 대한 스트레스.


회사 선배는 착하다. MBTI "F" 형이라 감수성도 풍부다. 자신이 착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보니, 타인도 그만큼 착하게 감수성 있게 대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타인에게 어떠한 반응과 행동을 기대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아왔고, 이에 대한 해결책 또한 알고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타인에게 기대하는 삶의 테두리에 갇힌다.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회사 직장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친한 친구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얻기 위해

심지어는 배우자에게 마저도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사주었을 때, 내게 똑같이 사주거나 감사를 표했으면 하는 마음. 친구 가족의 장례식장에 갔을 때, 그 친구도 내 가족의 장례식에 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타인의 반응이나 행동은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면 서운한 마음이 들고, 실망하게 되고, 심하게는 그 탓을 자신에게로 돌려 자존감이 아진다.


이렇듯 타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삶은 필연적으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기대하는 만큼 혹은 그 이상의 반응이나 행동이 나올 확률보다, 기대에 못 미치는 반응이나 행동이 나올 확률이 더 높기 때문.


결국 타인에게 기대하는 삶은 서운함과 실망감, 불행감을 키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회사 선배는 자신이 친하다고 생각한 지인에게서 기대했던 반응을 얻지 못하였다. 왜 그 친구가 그 정도로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관계에서 오는 서운함과 실망감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삶의 주도권이 없다'


기대하는 삶의 제일 큰 문제는 자신의 삶에 주도권이 없다는 점. 주도권이 없기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게 되고, 항상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


마음이 불편한데 정확한 원인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내 삶의 주도권에 대해 "주도적"으로 생각해 볼 시간을 갖지 않았기에.


어떤 이들은 나 자신이 상대방에게 쉽게 서운해하고 실망하는 성격인가 보다 정도로 치부한다. 이를 멈추기 위해서는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부모님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돈을 받는 회사와의 관계 등 모든 관계에 있어서의 주도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회사 선배는 친구들과의 관계, 회사와의 관계에 있어서 모두 끌려다니는 입장이었다. 회사 선배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더욱 안타게 느껴졌다.


너무나 소중한 분의 장례식장에 오지 않은 친한 지인들에게 큰 실망감을 느낀 경험이 있다. 조문을 오지 않은 지인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오래 끌고 갈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깨달았다. 서운한 마음과 실망감은 장례식장에 오지 않은 지인들의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나 자신이 타인에게 기대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내게는 한없이 소중한 분이지만, 이를 나만큼 슬퍼해줄 이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가족조차 그러한데 친구들은 오죽랴.


회사 선배처럼 끌려다니는 삶을 살아왔지만 삶의 주도권을 가져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면서부터 불행감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었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자고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고 그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삶에는 서운한 마음도, 불행도 없다.


물론 이 길은 수동적인 삶보다 힘들다. 마치 폭포수를 역행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고됨은 결국 하루하루 성장해 나가는 즐거움으로 바뀌더라.


그러니 기대하는 삶 대신 기대되는 삶을 살자.


종국에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타인에게 기대하고 끌려다니는 삶이다. 이 같은 불행을 끊을 수 있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누구든 충분히 끊어낼 수 있다.


평생 미루고 수동적으로 살던 나조차 그 과정을 겪었고 끊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누구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글을 쓴다. 이 글을 읽는 이들 또한 분명히 끊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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