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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큐 Dec 01. 2023

[14] 첫 전시를 하다

 첫 전시의 기회가 생겼다. 전시라고 하면 대단하고,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전시의 사전적 의미는 보이기 위해 나열하는 것이다.

0그램의 팝업 전시공모를 보고 용감하게 신청을 해보았다.

안 되겠지 뭐..라는 생각반, 혹시 모르지 하는 생각 반..

 

결과는..

 

됐다!!!

 

뭐지? 내가 전시를 할 수 있는 것인가?

공모를 한 곳은 젊은 청년들이 해방촌에 작은 공간을 빌려, 전시관으로 꾸민 곳이었다. 작은 규모와 거리가 먼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전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작업했던 작품 중 몇 가지를 골라서 내용과 함께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나의 작가명(by.Q)과 다른 작가님들의 이름이 함께 적힌 포스터가 o그램에 올라왔다.

 

우와!!!! 나도 작가가 된 것인가!!!

 

너무 신기하고 신났다. 그동안의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때, 갑자기 언제나 그러하듯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어떻게 전시가 되는 것이지?...

 

다른 작가님들은 피지컬 작품이기 때문에 걸면 된다. 하지만 내 것은 디지털 파일이라서 어떻게 전시가 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전시업체에서는 나의 그림을 빔으로 쏜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다행이네..

 

그런데,, 빔으로 쏘면 낮엔 잘 안 보일 텐데...

 

걱정이 엄습했다..

 

역시 전시업체에서 이것저것 배려를 해주었지만 낮에는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는 답변을 들었다.

 

음... 고민을 하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아쉬운 대로 디지털 파일 중 하나를 캔버스에 출력해서 함께 걸기로....

 

급하게 검색을 하고 캔버스에 출력이 가능한 업체를 찾아 주문했다.

 

며칠 뒤 캔버스가 도착했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생각보다 괜찮은 캔버스를 가지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 간 김에 대학교 때 하숙집 친구에게 정말 오랜만에 장난으로 전화를 했다.  

 

나 지금 양재 지나는데,, 센트럴시티로 이십 분 내로 나와라.

 

친구의 답은 이랬다.

 

응.. 조금 늦을 수도 있어..

 

뭐지? 농담인가..

하지만, 진짜였다. 양재에서 업무상 미팅이 있었단다.

 

정말 10년 만에 보는 친구였다. 연락은 꾸준히 하긴 했지만, 막상 만나면 어색할 것 같은 걱정은 잠시..

 

친구는 친구인가 보다. 우린 만나자마자 실없는 농담을 하며, 예전 대학교 하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터미널 앞 근처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지나온 세월을 요약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런데,, 너 이게 뭐냐? 친구가 물었다.

 

응.. 오늘부터 전시 있어서 서울 온 것이고, 이거 전시할 거야..

 

친구의 눈빛은 다행히 어이없음이 30%, 응원한다는 것이 70%로였다.

 

그렇게 우린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난 이태원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태원 역에서 내려 해방촌 전시하는 곳의 주소를 검색하고  

한참을 걸었다.

 

덥다. 멀다.

 

언덕의 끝에 위치해 있는 전시공간은 생각보다 작았다.

 

괜찮다. 뭐 어때..

 

주인장과 인사를 하고, 이미 전시되어 있는 작가님들의 작품을 둘러보고,

작은 빔으로 열심히 활동 중인 나의 그림도 보았다. 힘겨워 보였다.

 

내가 가져온 캔버스를 지원군으로 붙여주니, 작은 빔도 힘을 내는 듯했다.

그렇게 첫 전시의 설치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려는 찰나..

 

주인장이 요청을 한다.

 

작가님 죄송한데, 여기 창문에 그림하나 그려주실 수 있으세요. 하며, 보드마카를 나에게 건넨다.

 

거절할 용기도 정신도 없었다.

 

보드마카를 받아, 그냥 막 그렸다.

 

주인장은 그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촬영하면서 스치 듯한 혼잣말.. 와 잘 그리시네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 더 열심히 그렸다. 부끄러움에 매우 빠르게도 그렸던 것 같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역시 멀었다. 차를 끌고 올걸하는 후회를 해보지만, 차를 끌고 왔다면 10년 만의 친구와의 조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 그러한 것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후회를 감금한다.

 

그날 저녁 나의 그림과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들이 계정에 올라왔다.

 

참여한 작가들이 많아 그들과도 o그램 친구를 맺게 되고, 몇 분과는 꾸준히 좋아요를 눌러주며 응원하는 사이가 됐다.

 

아. 이 맛에 전시를 하는구나!  

 

첫 전시는 10년 만에 친구를 만나게 하고, 해방촌이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었으며, 다른 작가님들과 함께하는 즐거움도 알게 해 준 상당히 의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그림에 감상폄을 해주었던 그 친구도 전시장을 친히 방문해서 관람을 하고 감상평을 또 한 번 올려 주었다.  

 

와준 것도 감사한대 또 감상평을...

 

친구님 내가 꼭 밥 한 번 살게요!

 

그렇게 나의 어설픈? 첫 전시가 이 주 뒤 끝이 났다.

 

그런데, 그 캔버스는 어떻게 찾으러 가지...?


Rainbow in the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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