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이큐 Dec 02. 2023

[16] 변화 또는 진화 또는 퇴화

 디지털 작품은 한계가 있었다. 물론 나에게 있어서의 한계이다. 


첫 전시를 통해 느낀 점은 고화질 대형모니터가 있는 디지털 전문전시관이 아니라면, 전시가 어렵고, 전시를 하더라도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내가 전문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제작하는 디지털 전문 아티스트였다면, 전시하는 기회도 전시할 곳도 많았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무턱대고 집 근처에 있는 화방을 갔다.  

 

지하 어두운 곳에 위치한 화방이었는데, 사장님 한분이 취미 겸 운영하시는 듯했다. 사장님께, 물감은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붓은 무엇을 써야 하는지 등등 간단한 설명을 듣고, 아크릴물감과 붓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캔버스를 샀다. 

 

커다란 봉지에 담긴 물감과 붓, 캔버스를 차 뒷좌석에 실어보니, 정말 작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이설렘은.. 

 

그날 저녁 드디어 첫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올렸다. 

 

막상 그림을 그릴 장소도 없었다. 고민하다가 둘째에게 허락을 받고 둘째 방 책상에서 그리기로 한다.  

 

아크릴 물감은 금방 마르고 한번 마르면 수정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농도를 조절하기도 어려웠다.  

 

캔버스는 왜 이리 크고 붓은 왜 이리 작은 건지.. 

 

처음답게 잘 망쳤다. 망쳤다기 보단,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상처받은 사람들이라는 작품이었는데, 개인적으로 끌리는 디지털 작품 중에 하나를 캔버스에 표현하고 싶었다. 

 

멀리서 보면 즐거워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상처받은 흔적들이 있는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막상 첫 캔버스 작품이어서 그런지 많이 아쉽다. 

 

(첫 아크릴 작품으로 내가 상처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괜찮다. 아크릴 물감이 어떠한 느낌인지, 그리고 캔버스는 어떤 느낌인지 배웠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캔버스가 가지는 그 특유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하얀 캔버스를 책상 위에 놓고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정말 묘하다.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하지.. 

 

캔버스와 대화를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캔버스와의 첫 대화여서 인지 어색한 기운이 그대로 작품에 담겼다. 

 

그래도 소중한 나의 첫 캔버스 작품이다. 뒤에 서명은 하지 않았다. 

 

작가들은 작품을 완성하면 마지막에 서명을 한다. 

 

나는 캔버스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그리고, 그 캔버스 위를 얇은 철망으로 덮고 싶었다. 하지만, 철망은 생각보다 구부리기 어렵고, 깔끔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캔버스 위에 철망을 덮지 못하고 있다. 나중에 문득 철망보다 좋은 소재가 생각나면 그때 마무리를 할 예정이다. 

 

마무리를 하고 그때 서명을 할 것이다. 

 

By.Q라고.. 

 

첫 캔버스 작품은 나에게 있어, 변화였을까?, 진화였을까? 퇴화였을까? 

 

나는 화였다고 자평하고 싶다.


상처받은 사람들
작가의 이전글 [15] 사람을 만나다.(중년 아티스트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