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4 토플의 기억

초등학교~고등학교

by 허지현

첫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본격적으로 공인인증시험들을 만나게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입시, 그리고 취업 때까지의 긴 여정으로 볼 수도 있겠다. 토플은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때까지 제일 여러 번 도전하고 고생한 시험이었다.


내가 토플을 치기 전 교재로 공부했을 때는 CBT(컴퓨터 베이스 테스트) 형식이었는데, 정작 직접 시험을 본격적으로 칠 때는 IBT(인터넷 베이스 테스트)로 변경되었다. 그래서 내게 익숙한 형식은 토익과는 사뭇 다른 읽기, 듣기, 말하기, 작문 이렇게 4 분야로 치는 시험이었다. 각 파트별 30점씩 해서 도합 120점이 최대 점수였다. 특성상 말하기와 작문은 사람이 직접 채점해야 했기 때문에 시험 결과가 미국에서 올 때까지 대기를 하는 기간도 좀 있었다. 지금은 찾아보니 시험 시간이 2시간으로 줄었다고 하던데, 내가 칠 당시에는 읽기 60~80분, 듣기 60~90분, 휴식 10분, 말하기 20분, 작문 50분 해서 거의 4시간이 걸리곤 했었다.


초 6 때는 80점대로 시작하여 90점, 100점대를 지나 결국 최고점인 113점을 마지막으로 이제 연을 끊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시험 1회당 220달러로 굉장히 비싼 시험이었는데 믿고 항상 지원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110점을 넘으려고 하던 이유는 대학 입시 때 110점을 넘어야 안정권이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알음알음 들어서 그랬다.


몇 년간 학원과 과외를 포함해 대여섯 군데를 다니기도 했으며 지원해 주신 부모님도 그렇고 그냥 시키는 대로 둔하게 다 따랐던 나도 참 고생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점수가 나와서 다행이지만 아니었다면 그 아쉬움이 너무 컸을 것 같다. 게다가 최고점을 맞을 때는 시기상 대학 수시 관련 서류를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참 아슬아슬했었다. 지금 와서 보니 항상 턱걸이로 문턱을 넘던 내가 참 운이 좋았다.


토플에 대한 추억 아닌 추억도 몇 가지 있는데, 고등학교 때는 나중에 입학하게 되는 대학에서 시험을 춰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추억 외에도 토플을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만한 내용도 있다. 토플 테스트를 치면 항상 마이크와 헤드셋을 점검하는 시간이 있는데, 예시로 Describe the city you live in이라는 질문과 함께 무표정의 흑인 한 명의 사진이 항상 나왔다. 시험장에서는 실제로 답변을 하기보다는 테스트에 의의를 두고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고는 했다.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하면 항상 주술처럼 이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며 웃고는 한다.


또 더미 문제라는 게 있어서 점수 반영이 안 되는 질문 세트가 있었다. 읽기와 듣기 항목에서 늘 나오곤 했었는데, 늘 주제가 같아서 친숙한 라플라시아 꽃, 철새 이동, 래그타임 등의 주제들이 나오면 기지개를 켜며 작은 휴식 시간을 갖기도 했었다.


이렇게 적다 보니 참 필사적으로 열심히 했던 때가 떠올라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어른이 되어서는 오히려 필사적인 노력이 독이 될 때가 자주 있어서 일부러 쉬엄쉬엄 할 때가 있는데, 참 아이러니하다. 질주하는 모멘텀을 장거리 달리기로 바꿔야 하는 시점의 시행착오도 쉽지 않았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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