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 이직의 추억

첫 직장

by 허지현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이직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공장 동기들 중에서도 비교적 좋은 사람들과 같은 부서에 있었고, 연봉도 괜찮았으며, 업무에 익숙해진 뒤에는 나름 만족스러운 환경이라 느꼈다.


그럼에도 결국 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친하게 지내던 H형의 퇴사 소식을 들은 순간이었다. 물론 ‘H형이 없는 회사는 다닐 가치가 없다!’ 같은 극단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다만 이미 스무 명쯤 되는 동기들이 하나둘 이직하며 줄어들고 있었고, 그 흐름 속에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이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분석에 따르면, 당시 코로나로 채용이 축소되면서 높은 스펙의 지원자들이 몰렸고, 그들이 시간이 지나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났다는 해석도 있었다. 꽤나 수긍이 가는 설명이었다.


H형은 떠나며 내게 “더 나은 곳이 있다면 옮기는 게 좋다”라고 조언했고, 그 말을 계기로 본격적인 이직 준비를 시작했다. 방송사, 배터리 회사, 에너지 기업 등 다양한 곳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녹록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이직의 가장 큰 동기는 ‘지방 근무’에 있었다. 장거리 연애는 점점 버거워졌고, 인프라 부족과 주말마다 서울을 오가는 생활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 피로를 남겼다. 그런 생활 속에서 우울감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어느새 나는 ‘서울에 있는 직장’을 구체적인 목표로 삼고 있었다.


다행히 코로나 이후 정착된 비대면 면접 덕분에 사택에서도 준비할 수 있었고, 가끔은 휴가를 내어 면접을 보러 다녔다. 서류 탈락, 1차 탈락, 2차 탈락… 여러 번 떨어졌지만 매번 한 단계씩 전진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 멘털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웠던 최종 탈락도 있었는데, 일주일 만에 모든 절차가 끝난 경우라 내정자가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결국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최종 합격했다. 화장실에서 몰래 결과를 확인한 후,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됐다”를 외쳤던 그 짜릿함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기쁨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직 사실이 퍼지며 회사 내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었고, 일부 동료들과의 관계는 틀어졌다.


가장 곤란했던 건, 준비 과정에서의 실수였다. 당시 같은 팀의 파트장님이 “요즘 이직 준비하는 거 아냐?”라는 농담을 반복했고, 순진하게도 그 질문에 솔직히 답했더니, 이를 엿들은 과장 한 명이 사내에 소문을 내버렸다. 최종 발표도 나기 전이었기에 자칫 불합격이라도 했다면 난처했을 것이다. 다행히 결과는 합격이었고, 오히려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기에 이직을 알리는 건 수월했다.


하지만 이직은 누구에게나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특히 옆자리에서 함께 일하던 대리님은 내 이직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나를 노골적으로 피했고, "나가면 남남"이라며 단호한 선을 그었다. 그런 반응에 상처를 받았지만, 굳이 억지로 관계를 이어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문을 퍼뜨린 과장도 “안 가면 안 되냐”며 농담을 건넸지만, 내겐 전혀 웃기지 않은 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진심으로 축하해 준 사람도 있었다. 입사 초부터 나를 가르쳐준 H 과장님이었다. 마지막 날 함께 저녁을 먹고 “한 번 안아보자”며 수줍게 포옹해 주셨는데, 지금도 그 순간은 진심으로 감사하게 남아 있다.


나는 원래 사람을 오래 붙들어 두는 성격이 아니다. 퇴사 후 전 직장 사람들과는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H 과장님과도 한동안 인사를 나눴지만, 관심사와 환경이 달라지면서 점차 말문이 막혔다. 주변을 보면 여전히 전 직장 동료들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관계가 오래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러다 또 한편으론, 굳이 계속 이어갈 만큼 끌리는 사람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애써 합리화하기도 한다.


이제 보면, 지금 다닌 회사에서의 근무 기간이 첫 직장을 훌쩍 넘어섰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회사에서 너무 쉽게 소비되는 말이라 조금은 거부감이 들지만, 나 역시 다음 단계를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리란 어떤 사람인가', '그 수준에 도달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요즘이다. 처음 일을 시작하던 날과, 첫 이직을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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