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성
앞선 장들에서 우리는 인간 감정의 생물학적 기원을 살펴보았습니다. 핵심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1. 인간의 욕구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 기제이며, 제거 불가능하다.
2. 고통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신체의 경고이며, 불안·슬픔·분노 등의 감정으로 표출된다.
3. 쾌락은 욕구 충족 시 나타나는 보상이지만, 지속되지 않고 빠르게 사라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려 합니다. 고통이 욕구 결핍에서 기인한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두 가지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모든 욕구를 항상 충족시켜 고통을 없애는 삶(쾌락추구)
- 욕구 자체를 제거하는 삶
인간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삶이 과연 고통을 줄여줄 수 있을까요?
2.5장에서 다루었던 바와 같이, 욕구 충족이 만들어내는 쾌락은 단기적이며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또한 뇌는 동일한 자극에 반복 노출될수록 항상성을 위해 쾌락 반응을 약화시키며, 이전보다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는 쾌락의 ‘내성’ 혹은 ‘보상 민감도 둔화’로 불리는 신경생물학적 현상이며 결국 만족은 줄어들고, 갈망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이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곧 중독으로 이어질 확률이 큽니다. 폭식이나 과도한 소비, 관계에 대한 집착, 성취에 대한 강박 등의 극단적 태도의 기저에는 모두 이러한 원리로 발생합니다. 처음에 만족감을 주던 행위에 집착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력한 자극 없이는 만족하지 못하게 되며 끊임없이 다음 자극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처럼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고통을 피하려는 삶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갈망과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쾌락을 행복으로 오인할 때, 인간은 끝없는 자극 소비에 갇히고 맙니다. 이 삶의 구조는 단기적 쾌감에 대한 의존성을 키우고, 장기적인 평온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이제 반대로 욕구 자체를 제거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의 전제는 앞서 설명한 인간의 욕구의 본질과 충돌합니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 예로 식욕·수면욕·안전욕 등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생물학적 조건이므로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이러한 욕구마저 배제하고자 하는 것은 생존 조건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모든 욕구를 제거하기보단 일부 욕구를 ‘선별적으로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의 욕구를 최소화시켜야 하는 것일까요? '욕구의 최소화'라는 개념은 자칫 들으면 우리 모두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최소한의 식량만을 먹고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모두가 그렇게 살 수는 없으며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와 다릅니다. 이 방법의 핵심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세운 기준에 따라 필요한 욕구만을 유지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는 삶의 전략입니다.
모든 인간은 각기 다른 유전적 조건과 환경적 경험을 통해 형성된 유일무이한 고유의 존재입니다. 일란성쌍둥이조차 다른 지문을 가진 것처럼 우리 모두는 다른 욕구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외부의 인정에 민감한 반면 다른 누군가는 고립된 환경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렇기에 ‘절제의 기준’ 역시 보편적일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욕구의 기준을 가졌다는 것은 결국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결국 삶은 각자에게 1인칭 시점이기에 각자 스스로 자신을 관찰하고 파악해야만 합니다. 어떠한 욕구가 반복적으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 반대로 어떤 욕구가 자신의 삶의 안정에 도움이 되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이 탐색은 시행착오를 포함하며, 감정 반응을 일관되게 관찰하고, 결과를 되짚어보는 과정 속에서 점차 정교해집니다.
추가로 욕구의 선별과 최소화는 고정된 목표가 아니라 지속적인 탐색과 조율해 나가야 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변화하며, 우리의 사회 및 환경 또한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절제의 기준 역시 유동적이어야 하며, 자기 점검과 수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렇게 주체적인 기준을 통해 삶을 바라보아야 비로소 ‘평온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평온이란 욕구와 고통, 감정과 조건들이 서로 조화롭게 일정한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억제나 회피가 아니라, 관찰과 수용, 조절의 결과물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苦, Dukkha)의 개념도 이와 연결됩니다. 본래 Dukkha는 수레바퀴가 축에 잘 맞지 않아 매끄럽게 굴러가지 못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과 외부 자극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고통을 느끼는 상태도 이와 같습니다. 자신이 세운 기준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외부 환경의 자극이 조화를 이루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은 평온해집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 또한 이와 유사한 점 점을 강조합니다. 그렇기에 불교에는 전통적으로 괴로움에 대한 4가지 진리인 4제(四諦)와 이를 극복하는 8가지 방법인 8 정도(八正道)라는 훈련법을 가르칩니다. 이를 본문의 논의와 함께 대조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1제 고제(苦諦) : 자신이 괴로운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 것
└ (2.1) 인간은 내재되어 있는 욕구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2제 집제(集諦) : 자신의 괴로움의 원인을 깨닫는 것
└ (2.1) - 고통은 결핍된 욕구에서 비롯된다.
3제 멸제(滅諦) : 괴로움이 없는 상태(불교의 경우 깨달음의 목표인 열반(涅槃))가 어떤 상태인지 깨닫는 것
└ (2.6 - 이번 글) 욕구를 선별해 최소화하면 고통을 줄인 상태인 평온함에 다다를 수 있다
4제 도제(道諦) :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방법(불교의 경우 이상향인 열반에 도달하는 훈련법)이 있다.
└ (2.6) - 자기 관찰과 조절을 통해 평온에 이를 수 있다
또한 불교의 8 정도(八正道) – 바른 견해(正見), 바른 생각(正思), 바른말(正語), 바른 행동(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 챙김(正念), 바른 집중(正定) – 은 단순한 수행 규칙이 아니라, 삶의 구성 요소들을 명료하게 바라보고 조율하는 훈련 체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욕구가 요구하는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탐구를 통해 직접 기준을 정립해야 합니다. 우리의 욕구는 죽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매 순간 감정에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불필요한 욕구를 줄일 수 있다면, 우리는 갈망에 끌려가지 않고 고통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주체적인 자기 기준이 세운 심지가 굳건한 사람은 외부 자극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신호를 인식하고, 감정을 판단이 아닌 정보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욕구를 느끼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욕구 그 자체는 우리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무비판적인 욕구 추구는 제거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비판적 관찰을 통한 욕구의 재구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나침반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질문을 바꿔 스스로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나는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그 질문의 답이 가리키는 방향을 쫓으면 삶은 평온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