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Zeroing 11화

3.1 절대적 의미의 부재

부조리함과 실존주의

by 허지현

1장에서는 결정론적 우주가 가지는 의미와 이를 관찰자적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확률론적 우주도 동일)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2장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고통과 감정을 생물학적 기능으로 해체하여 바라보았고, 이를 억제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수용과 관찰의 태도를 갖는 것이 평온에 이르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우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고찰해 보겠습니다.


절대적 의미의 부재


우리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에 앞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의미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결정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단지 우주의 구성요소와 자연법칙이 얼러져 발현된 하나의 현상일 뿐이며 이것이 자체적으로 어떠한 가치나 의미를 가지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고, 경험하고, 심지어는 감정을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 모두 하나의 자연 현상입니다. 이 맥락에서 의미란, 자연 상태에 본래부터 부여된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 사후적으로 해석을 통해 구성해 낸 상징적 구조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이러한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도 태어났으며, 하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패턴을 찾고, 반복되는 현상을 해석하며, 그 안에서 일종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종종 종교, 신화, 도덕, 이념의 형태로 구조화되며, 그것이 마치 본래부터 주어진 진리인 것처럼 오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틀에 박힌 사고를 부수기 위해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가치에 기대어 살아가는 상태를 ‘나약함’으로 간주했고, 인간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창조하는 '초인'(위버멘쉬 - Übermensch)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무신론’이 아니라, 의미를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현생에 집중하여 의미를 자율적으로 만들어가는 능력이었습니다.


무의미의 절망감과 실존주의


그러나 이처럼 절대적 의미의 부재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절망감을 안겨줍니다. 인간은 학습과 사회화를 통해 “어떤 것에는 일종의 의미가 있다”는 전제를 내면화하며 성장합니다. 따라서 이 전제가 해체되면 우리는 무지의 세계로 밀려나게 되어 불안하고 당황감을 느낍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사르트르, 까뮈 등—은 이 감정을 ‘부조리’라고 불렀습니다. 까뮈는 “삶은 무의미하다. 그래도 이를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를 신의 미움을 받아서 산 꼭대기에 바위를 올려놓는 끝없는 형벌을 받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 '시지프 신화'를 통해 설명합니다. 삶의 부조리를 인식한 뒤에도 계속해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의 모습에서, 까뮈는 부조리와 대면한 인간의 반항과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까뮈에 따르면 절망은 의미의 부재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발생하는 반응입니다.


무의미의 문제를 다시 정리해 보기 위해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컵에 담긴 물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물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이 물로 목을 축이고, 다른 누군가는 요리에 쓰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을 끄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물 자체는 그 용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은 단지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쓰임과 가치는 그것을 바라보는 존재의 ‘관점’과 ‘상황’ 속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를 실존주의 철학지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고 합니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태어난 그 자체로 삶은 존재하지만, 그 삶이 어떤 방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삶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 곧 삶이 무가치하다는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우리는 삶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빈 도화지를 받은 것과도 같습니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기에 불안하지만, 동시에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기도 합니다.


결론


삶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은 외부 환경의 자극이나 현상이 아니라, 그에 반응하는 우리의 해석입니다. 고통과 감정이 하나의 출력이라면, 각자 이를 해석하여 내리는 의미는 우리의 입력이자 선택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태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인간은 기계적인 결정의 산물인 동시에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의미함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 스스로의 의미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실존의 자유이며, 동시에 책임입니다. 의미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 창조의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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