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Zeroing 12화

3.2 의미를 부여하는 법

정신적 영점 조절

by 허지현

의미 부여의 시작점


앞장에서 결론을 내린 바와 같이, 이제 우리는 직접 삶의 의미를 부여해야 합니다. 세상에 절대적 기준도, 보편적 해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조리한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막막하고 두려워질 수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는 이 혼돈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의 의미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에 합리주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자신의 이성'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통해, 허상일지도 모르는 외부 세계와 달리 '생각하는 자신'만은 의심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했습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이 접근은 우리에게도 하나의 시작점을 제시합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삶의 기준점은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 곧 '내 감각과 해석'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선 장에서 말했듯, '나'라는 존재는 유전적 요소와 삶의 경험이 결합되어 형성된 생물학적 시스템입니다. 나에게는 이미 세상을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신경학적 구조와 정서적 회로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다양한 자극에 대해 감정과 사고라는 출력값을 생성해 냅니다. 이 결과가 곧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에 의미를 부여할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과 생각을 통해 삶의 방향성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절대적 정답이 없다는 것은 반대로 내가 내린 선택도 꼭 오답이라 볼 수는 없다는 위안을 줍니다. 의미란 본래 상대적이며, 우리는 각자의 보상회로와 감정 반응을 따라 살아가며 실험하듯 그 의미를 정립해 나가는 것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구성원으로서의 존재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유의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우리는 언제나 타자들과 관계 맺는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사회는 체제 유지를 위해 수많은 관습과 규범을 통해 의미의 틀을 설정하며, 우리는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그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단순히 내면의 기준만으로 살아갈 수 없으며,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와 조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타협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며, 도덕과 윤리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문화적 차이를 예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손으로 'V'자를 만드는 제스처는 일반적으로 승리나 단순히 사진을 위한 포즈의 의미를 갖지만 영국에서는 무례함이나 욕설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의미는 보편적이지 않으며, 사회마다 다르게 구성됩니다. 그렇기에 ‘절대적 의미는 없다’는 명제는 성립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각 문화 내에서는 해당 의미가 실제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르라'는 유서 깊은 말이 이를 증명합니다. 따라서 의미를 선택할 때,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조율하고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바로 유행입니다. 유행은 특정 시기 다수의 동의로 형성된 일시적 가치이며, 그것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점은 의미가 얼마나 상황적이고 상대적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특정 유행 아이템이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와 문화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 사라지기도 하죠. 우리는 이처럼 사회적 해석과 내면의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의미를 조정해 나갑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자기 기준을 정립해 나가는 반복적인 실천입니다.


자신의 기준, 영점 조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회적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을까요? 바로 자신만의 기준, 흔들리지 않는 감정의 중심을 세우고 이를 꾸준히 정립하고 개선시켜 나감으로써 이를 행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은 고정된 신념이라기보다는 반복적인 정서적 피드백 속에서 다듬어지는 자기 감각입니다. 마치 은신처처럼,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내면의 구조이자, 변화하는 환경 속 자신의 리셋이자 영점 조절입니다. 물론 사회가 부여하는 가치에는 그 자체로 기능적 의미가 있으므로, 이를 부정하거나 무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가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를 기준 삼아 판단해야 합니다.


예컨대, 어떤 이는 금전적 이익이나 사회적 성공보다 홀로 조용히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충만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는 타인의 고민을 듣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활동이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는지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얼마나 반복적으로 진실한 감정의 울림을 주느냐입니다. 삶의 의미는 결국 보편적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신경 구조와 경험이 만들어낸 고유한 반응 양식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의 기준을 타인을 이해하는 데 활용하고, 자신의 기준을 자기 해석의 중심축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외부의 비교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의미는 주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감정과 경험, 그리고 반복적인 자기 관찰이 있습니다. 의미는 선택되며, 그 선택은 곧 나라는 존재가 세상과 맺는 가장 본질적인 관계 양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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