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미국유학
우리가 미국에 살던 시절, 그 지역 한인 커뮤니티에 속해 지내는 일은 우리 생활의 꽤 큰 부분을 차지했다. 한국에서는 모두가 같은 인종이고, 어떤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그 집단의 성격이나 목표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분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우리가 모두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한인 커뮤니티에 속해 지내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고, 미국 생활에서 여러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었다.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안에서 가족끼리 서로 잘 어울리게 되었고, 아이들끼리도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중에서 우리가 가장 가까웠던 가족은 형제와 자매를 포함해 총 네 명의 아이가 있던 대가족이었다. 어머니가 그 집과 특히 친하게 지내셨던 것도 우리가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그 집의 첫째 형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는데, 정말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너무 순해서 오히려 일상에서 손해를 보며 지낼 것 같은 타입이었다. 한 번은 내가 장난을 치다가 형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형은 화도 내지 않고 그저 나를 스쳐 조용히 지나갔다. 그런데 나중에 스스로 와서 “아까는 내가 잘못했다”라고 사과를 하는 바람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순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형은 가끔 ‘그렇자네’라는 말투를 쓰곤 했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투가 이상하게 형이 가진 순한 이미지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기도 했고, 함께 있을 때는 항상 부드럽게 분위기를 맞춰주던 사람이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도수가 꽤 높아 보였다. 왜 이제야 안경을 썼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남들도 다 자기처럼 잘 안 보이면서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해서, 그쪽 부모님도 우리 어머니도 모두 어이없어했던 기억이 있다.
둘째는 나와 동갑내기 여자애였는데, 남매 중 유일한 여자여서 그런지 성격이 꽤 보이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어깨를 살짝 넘는 단발머리, 마른 체형이었다. 운동을 잘했고, 공부도 잘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나중에 의사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당시의 이미지로는 상상이 잘 안 되긴 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당시에도 굉장히 당돌하고 주저함이 없는 성격이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내 동생과 동갑인 남자아이였다. 한국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미국 이름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조금 바보 같은 구석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가 자주 장난을 치곤 했다. 동생을 좋아했던 것 같은 느낌도 있다. 첫째 형이 ‘순하고 착한 타입’이었다면, 이 친구는 ‘약간 어수룩한 타입’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함께 놀면 재미있는 아이였다.
막내는 정말 아기였다. 두세 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장아장 걷고 종종 넘어지던 모습이 떠오른다. 또 이 집 식구 중에는 지체장애가 있으신 삼촌도 계셨는데, 그 점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보통 방 안에 혼자서 지내 우리와는 교류가 거의 없었다.
이 집 식구들은 원래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 살다가, 나중에는 우리가 살던 빌라 단지로 이사 오기도 했다. 이 단지에는 또 다른 한인 가족이 지냈었는데, 아버지는 의사셨고, 아이들은 자매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 한 명과 어린 동생 한 명이 있었다. 보통 이쪽과 직접적으로 놀기보다는 4인 남매들과 같이 많이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