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 홈스테이 집 식구들

2차 미국유학

by 허지현

홈스테이 시절 같은 지붕 아래 살던 인물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집에는 맨 위에 있던 나이가 많던 R 형 - 이제 너무 오래되어 한글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 형은 미술을 전공하여 동네에서 미술 과외도 받으면서 미국에서 미대를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요새 흔히들 말하는 에겐남으로, 실눈에다 마르기보다는 살짝 통통한 편에 가까웠고 우리와 같은 사립학교에 다녔다. 서글서글하고 좋은 사람이면서도 적당이 능글맞고 장난스러운 면이 있어 같이 생활하기에는 죽이 잘 맞았다. 형은 노트북으로 문명 같은 게임을 자주 했었다.


그다음으로는 나보다 한 2, 3살 많았던 E 형이 있었다. 이 형은 홈스테이 집의 조카로, 요식 업계에서 일하시는 어머니께서 돌보시기 어려워 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짜거나 케이터링 쪽 일을 하셨던 것 같다. 형의 어머니 덕에 오렌지카운티라는 번화가에 있는 식당에서 스시를 한 번 먹어본 적도 있었다. E형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린 시기에 이민을 와서 한글을 잘 못했다. 듣고 말하기는 어느 정도 잘했으나 글을 읽거나 쓰는 건 잘 못했던 것 같다.


R형과는 달리 E형은 강한 테토남의 정석이었다. 우리와는 다른 국립 L 고등학교를 이 집 딸과 함께 다녔으며 거기서 미식축구를 했었다. 덩치가 컸으나 이미지는 되게 샤프했고, 해리포터 4편에 나오는 크럼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마냥 터프하지만은 않았고 어린 우리와도 잘 어울려줬었다.


에릭 형은 어른들 몰래 대마를 했었다. 한 번은 나한테 대마초를 꺼내서 보여준 적도 있었다. 동글동글 말려진 잎이었을 뿐인데 어린 나는 그 불법적인 느낌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나한테 “할래?”라고 물어봤을 때 나는 무서워서 그런 건 절대 안 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생일 선물로 뭘 원하냐 했을 때 물담배를 받겠다고 하여 우리는 돈만 주고 자신이 몰래 어딘가 가서 구매했었다. 따로 차가 없고 도보로 걸어 어딘가를 가기에는 너무 멀어서 형은 이따금씩 우리가 사는 거리에서 좀 걸어가서 로컬 딜러가 연락을 받고 차를 타고 오면 거래했었던 것 같다.


이 형은 나중에 군대에 가서, 카투사 생활을 하던 나와 미군으로서 다시 마주친 적도 있었다.


그다음은 나랑 같은 중학교 동창이었던 HC이었는데, 학교와는 달리 같이 생활하다 보니 서로 투닥대며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었다. 특히 나와 같은 방을 써서 그러기도 했다. 바로 옆에 붙어 잔 것은 아니었고 매트리스를 바닥에 놓고, 한쪽 벽면을 따라 각각 'ㄱ' 자로 떨어져 자는 구조였다. 기본적으로는 친했으나 다만 장난치다가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내가 맞기도 하는 등 크고 작은 해프닝들이 있었다.


HC군도 성격이 모난 구석이 없진 않아서 이기적이고 눈치도 없는 구석이 있어 홈스테이 집 어른들과도 이따금씩 마찰이 있었다. 막 대놓고 화를 내거나 “아저씨가 뭔데 그러냐” 이런 식으로 대드는 건 아니었는데, 말투나 태도가 은근히 어른들을 약 올리는 느낌이었다. 본인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슬릴 만한 말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한 번은 아저씨가 우리를 학교에 태워다 주다가, 차 안에서 그 친구가 너무 말대답을 계속해서 그런지, 갑자기 아저씨가 운전하다 말고 뒤돌아서 주먹으로 그 친구 허벅지를 한 번 쳤었다. “조용히 좀 하라”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집 딸도 있었다. 마르고 조용했으나 조금 예민한 성격으로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랑 사이좋게 지내려는 생각은 거의 없어 보였다. 교류나 대화도 많지 않았고, 자기 친구들이랑만 어울리는 데 바빠 보였다. 딱히 무언가를 특출 나게 잘하지도 않고 고만고만한 애였다.


이 집의 아저씨는 머리가 다 까지고, 뚱뚱했으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감이 꽤나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한 직업은 잘 모르겠으나, 한 번은 어느 중국제 전자기기를 가져다 팔 계획이 있다고 한 것을 봐서는 어느 사업 같은 것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늘 이건 이래야지, 저건 저래야지 등의 지적이나 자기의 무용담을 늘어놓던 점을 보면 듣기보단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아줌마는 따로 직업은 없으셨던 것 같고 평범한 미국의 한인 주부셨던 것 같다. 아저씨만큼은 아니었으나 체격이 좀 있으셨고, 말이 많으신 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남에게 호의적이지도 아주 적대적이지도 않은 미묘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외모 말고는 크게 생각나는 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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