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미국유학
이 시절에도 교회를 다녔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도 사립 기독교 학교였고, 홈스테이 가족들도 성격과는 좀 다르게 교회를 다니는 편이었다. 그래서 한인 교회에 나갔었고, 거기서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교회에는 나보다 몇 살 위였고 키가 컸던 K 형도 있었고, 동갑의 T라는 친구도 있었다. 그 외에도 몇 명이 더 있었지만, 그나마 친하게 어울렸던 것은 이 둘 정도였다. 교회는 늘 그렇듯이 청소년부 건물이 따로 있었고, 성인 예배는 또 따로 진행됐다. 예배 때는 CCM이라고 해야 하나, 기독교 노래를 팝송 느낌으로 편곡해서 부르는 밴드 예배 같은 형태였던 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리고 전도사 비슷하게 청소년들이랑 잘 어울리면서 챙겨주던 청년 형들도 있었다.
사실 예배 시간에는 절반은 듣고 절반은 졸았었다. 신앙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용은 늘 비슷하게 느껴졌고 내 의지로 간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별생각 없이 앉아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헌금은 부드러운 자주색 천으로 된 봉지에 나무 손잡이가 달린 걸로 돌렸는데, 적당히 냈던 것 같다. 이따금씩 안에 금액을 세는 것도 도왔었다.
예배가 끝나면 교회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시간을 보내면서 놀다가 집에 가곤 했다. 교회 건물 안에 안 쓰는 방들이 좀 있었는데,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벽의 2층 공간 같은 곳들이었다. 애들끼리 몰래 돌아다니면서 그런 방에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정작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많았지만 약간 탐험하는 느낌이라 재미있었다. 정기적으로 가는 곳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돌아다닐 만한 공간이 있어서 나름 재미가 있었다.
교회 근처에 있던 세븐일레븐에도 가끔 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고, 거기서 애들이랑 버거 같은 걸 사 먹기도 했다. 미국 편의점에 가본 기억은 거의 이때밖에 없는 것 같다. 교회 근처라서 가능한 경험이었다. 여름에는 수련회 같은 것도 갔고, 또래들이랑 어울리기에는 전반적으로 괜찮은 환경이었다.
교회에 있던 애들 중에는 재미교포들이 많아서 한국말을 잘 못 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말은 알아듣지만 한글을 못 읽는다거나, E형처럼 말은 되는데 읽기가 안 된다거나, 아예 한국말이 어눌해서 거의 영어로만 말하는 애들도 있었다. 예시를 들자면 "I went to 교회 with my 엄마"식으로 말하곤 했었다.
K형은 한국말을 비교적 잘하는 편이었고, T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같이 미국으로 건너온 애였다. 동생도 한 명 있었다. T는 친구가 정말 많았다. 마이스페이스랑 페이스북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친구 수가 그때도 몇백 명씩 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 많은 사람들한테 일일이 답장하고 관리하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자기 이미지 관리 같은 걸 굉장히 신경 쓰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까무잡잡한 자기 피부색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고, 시간이 갈수록 아주 솔직한 타입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인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