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미국유학
이 시절에는 토요일마다 도서관에 강제로 보내지곤 했다. 홈스테이 집 사람들은 공부를 시킨다는 좋은 명목 아래 우리를 도서관에 데려다 놓았다. 도서관은 두 군데를 주로 갔었는데 하나는 번화가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쇼핑 복합센터 안에 있는 도서관이었고, 다른 하나는 길가에 따로 있던 시립도서관이었다.
오렌지 카운티의 도서관은 확실히 크고 시설이 좋았다. 예전에 테네시에서 갔던 도서관에 비하면 좀 더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별도로 있었지만, 일반 사용자들을 위해 비치된 책이 훨씬 더 많았고 층고가 높은 구간과 창문이 큰 공간도 있어 여러 변주를 준 것이 느껴졌었다.
도서관에 가면 주로 숙제, 공부, 독서 등을 했었다. 영단어를 외우거나 관심 있는 주제의 책을 읽었는데, 만화책도 읽었다. 서양 만화인 가필드나 캘빈과 홉스 등의 만화책뿐만 아니라 일본 원작을 번역시킨 작품도 많이 읽었었다. 일반 서적은 무얼 읽었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집트 신화의 신들을 설명하는 두꺼운 책부터 숙제를 위해 조사용으로 읽었던 흑사병 서적 등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읽었다.
쇼핑 복합센터 안에 있다 보니까, 공부나 책을 보다가 질리면 산책을 나가 주변 상업시설을 구경하고는 했다. 스타벅스나 점바 주스 등의 카페나 음료 시설부터 각종 음식점과 푸드코드, 다양한 의류 브랜드와 서점, 영화관 등도 있었다. 애플스토어도 하나 있었는데 이때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어서 거기에서 인터넷이 되는 시험용 기기로 잠깐 웹서핑을 하거나 웹툰 몇 개 보고 나오기도 했다. 생일 선물로 받은 스타벅스 음료 카드로 음료수를 사 먹기도 했고, 조금 멀리 가서 베스트바이 같은 상점을 구경하기도 했다.
쇼핑 복합센터 쪽에서는 점심을 주로 푸드코트에서 먹었다. 보통 용돈을 쪼개서 10달러 안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다 보니 다른 식당들은 비싸서 못 갔었다. 보통은 핫도그로 때우는 일들이 많았는데, 핫도그에 조금만 돈을 더 내면 감자튀김을 같이 먹을 수 있어서, 그렇게 주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푸드코트 안에는 ‘징기스칸(그레이트 칸)’이라는 중국식 볶음 국수 식당도 있었다. 냉동 고기와 야채를 접시에 원하는 만큼 담고, 취향에 따라 소스를 고르면, 아르바이트생이 넓은 원형 철판 위에서 긴 막대를 사용해 볶아주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농담하면서, 냉동 고기가 동그랗게 말려서 접시에 잘 안 담기는 점을 이용해, 아르바이트생이 안 볼 때 접시에 꾹꾹 눌러 담아 탑처럼 쌓아 놓고 키득거리기도 했다. 한 번은 너무 세게 눌러 담아서인지 고기가 그릇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일하던 알바생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고, 별말 없이 그대로 조리해 주었다. 소스도 선택지가 많아서, 한 15가지 정도 되는 종류 중에서 세 가지를 골라 담아 먹을 수 있었다.
푸드코트 중앙에는 실내 회전목마도 있었다.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간단한 캘리포니아 롤을 파는 곳도 있었고, 스바루라는 피자·파스타 브랜드도 있었다. 특히 스바루는 피자를 슬라이스 단위로도 팔았는데, 한 번은 슬라이스를 옮기다가 다른 피자 위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 두 조각을 모두 버리고 새 피자 슬라이스를 다시 주는 모습을 보고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쇼핑 복합센터 안에 있던 의류매장(폴로였는지, 어디였는지는 정확히 기억 안 난다)에서 본가의 가족끼리 다 입으라고 스웨터를 네 벌 샀던 적도 있었다. 그걸 한국에 돌아와서 줬었는데 정작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입지 않았었다. 왠지 어디선가 본 스웨터를 입는 가족의 인상이 뇌리에 박혀서였을까, 왜 구매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하나였던 시립도서관은 규모가 훨씬 작았다. 2층짜리 건물이었고, 직사각형의 형태였다. 여기서도 비슷하게 숙제나 독서를 했었으나 비슷하게 일탈을 누리기도 했다. 예로 이따금씩 그 도서관에 갈 때는 노트북을 들고 가서 공부를 한다고 앉아 있긴 했는데, 사실 조용히 구석에서 게임을 하기도 했었다. 고양이 마리오 같은 게임도 하고, 웹툰도 봤던 것 같다. 2층으로 올라가면 만화책 코너와 아동 서적 구간이 있었고, 한쪽에는 예약하면 쓸 수 있는 작은 개인실 같은 공간도 있었다. 거기를 빌려서 HC랑 같이 들어가 영어로 된 만화를 읽기도 했었다.
작은 도서관 쪽은 주변은 딱히 구경할 만할 게 없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지 그나마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한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걷다 보면 나오는 타코 패스트푸드점인 델타코를 가끔 갔었다. 메뉴가 저렴해서 이것저것 변주를 주며 도전해 봤던 것 같다. 그 외에도 근처에 있던 가성비 피자 체인점인 리틀시저스도 가본 적이 있다. 혼자 먹긴 좀 커서 꾸역꾸역 먹다 배부르고 니글거려 결국 한 조각을 남겼었다. 한 번은 아래쪽으로 꽤 멀리 걸어서 큰길 쪽에 있던 맥도날드까지 갔던 기억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좀 흐릿하다. 어쨌든 도서관에 갔을 때 점심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그때는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델타코 건너편에 있던 은행에는 그날 기온을 표시해 주는 큰 전광판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오늘은 몇 도네” 이런 얘기를 하곤 했다. 한 번은 화씨 100도(섭씨로는 37.8도)까지 올라갔던 날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도서관에 가는 날의 동선이 거의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나름 내게는 따스한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세상을 탐구하는 소중하고 느긋한 어린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