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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령 Mar 06. 2022

행복, 그 파랑새의 행방

고찰 열셋, 행복에 대하여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수 차례 들어본 이야기다. 레일 깔린 인생을 그대로 살며 초, 중, 고등학교, 입시, 대학, 군대, 졸업, 취직 등을 겪으며 주변을 둘러보면 정말 그런 것도 같다. 그러함에도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어떤 이들은 늘 행복해 보이는 반면, 다른 이들은 항상 우수에 축축하게 젖어있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이유는 행복의 정의에 달려있다는 게 필자의 결론이다.


한 번은 행복 혹은 불행의 이유가 궁금하여 정말 많은 지인들에게 행복한지, 그렇거나 아니한 이유는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인상적이었던 것은 특정 인물이 처한 상황이 그들의 행복에 그다지 큰 영향이 없다는 점이다. 필자의 세대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인 취직 앞에서 전혀 다른 두 상태의 지인들의 평가가 갈렸다. 한 사람은 취준생이었고, 다른 친구는 국내에서 다들 부러워하는 조건의 대기업에 입사한 상태였다. 모든 것을 제쳐두고 네 글자로 그들의 기분을 물었다. “행복하니?” 물론 단기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해소 유무나 금전적인 여건의 차이는 있었으나, 취준생 친구가 더 행복해 보였다.


세부적인 이유를 하나하나 다 나열해서 따진다면 끝이 없겠지만, 필자는 이 작은 인터뷰들로 많은 것을 느꼈다. 막연하게 안정성과 금전적 여유를 행복에 연결시켜둔 자신이 부끄러웠다. 막상 취업하여 회사에 다니고 있는 본인조차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면서 그러한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으니 스스로가 파렴치하여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차피 사람이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한정적이다. 인생은 찰나의 사건과 그 사이의 긴 공백으로 이루어진다. 대학 입시에 성공한 순간, 전역하는 순간 등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을 제외하면 매일이 그저 일상일 뿐이다. 그런 순간들에서 딱히 더 안정적인 자리에 있느냐 아니냐는 매 순간 느끼는 감정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 사람은 그렇게 큰 개념을 매 순간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단체나 자본에 자신을 투영하는 존재들은 내부의 큰 상처를 마주 보기 버거운 안타까운 존재들이라 생각한다. 결국 누구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긍지와 자신의 신념만이 오로지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


다시 행복의 주제로 돌아와서 이야기해보자. 사람이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제한적이라 한다면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하는가? 결국은 자신의 관점이겠다. 현대그룹 초대 회장인 정주영의 옛 인터뷰 중 그런 말이 있다. “어렵고 골치 아픈 일은 그게 해결될 적에 재밌고, 또 잘되는 일은 잘되는 대로 더 재밌고…(생략)… 걱정하는 사람은 잘되는 일은 잘 안 될까 봐 걱정을 하고 또 안 되는 일은 안 될까 봐 걱정하잖아요?” 그 말 그대로다. 사람이 타고 난 기질이 있어 누군가는 아무 일이 없어도 기본 상태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반면, 다른 이는 행복을 느낄만한 일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자신의 우울한 기질을 깨부수고 행복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를 내려 자신의 삶을 곧이곧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불행의 그림자를 뿌리칠 수 있다.


불행하다고 느끼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천천히 시작해보자. 필자도 기본 상태가 우울한 인간인지라, 누군가 보지 아니한들, 이렇게 결과물이 남는 글이라도 매일 끄적이며 발버둥치고 있다. 또 혹시 모른다. 이런 발버둥침의 잔물결이 누군가에게 도달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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