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소나기와 순수함
소나기를 오랜만에도 읽었다. 처음으로 소나기를 읽었던 것은 역시 중학교 국어 시간이었으리라. 당시에는 소년이 소녀가 죽어서 슬프겠거니 했어도 국어 선생님께서 그토록 말했던 그 “순수한 마음”이 그토록 와닿지 않았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직은 젊다 하지만 인제는 순수한 마음만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애초에 어린아이가 아닌 사람이 순도 100%의 사랑을 하면 세상은 그를 바보 취급한다. 마음은 그럴지언정 사랑만을 하면 살아갈 수 없다. 현실 속에서 책임져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당연한 이치지만 어딘가 슬픈 말이다. 분명 옳은 선택만을 하며 살아왔다 믿었는데 어느새 세상 떼가 다 묻은 어른이 되어버렸다. 매일같이 세수를 하다 보면 세숫대야에 물때가 끼듯 나의 인생살이도 그러한가 보다.
죽지 않으려면 자라나야 한다. 자라나면 세상에 순화되어 때가 묻는다. 그렇기에 순수한 마음은 찰나에 밖에 존재할 수 없고, 어른이 되면 그 기억이 희미해진다. 나는 이게 나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순수함을 유지하기 위해선 세상과 떨어져 살거나 죽어버려야 한다. 소나기는 이 두 요소가 다 들어가 있다. 소년과 소녀는 남들로부터 떨어져 세상을 처음 보듯이 구경한다. 소녀는 말 그대로 이방인이며, 소년은 소녀와 함께 본 세상이 낯설기에 또 하나의 이방인이다. 그렇게 잠시 스쳐간 이 짧은 만남은 소녀의 죽음으로 한번 거세게 내리고 그친 소나기처럼 끝나버린다. 종지부가 있기에 박제되어 버린 순수함은 소녀의 옷자락에 물들어 함께 땅속에 묻힌다.
이제는 왜 소나기가 좋은 글인지 이해가 되고 보인다. 그러나 늘 그렇듯 차라리 이해하기 전으로, 직접 우리 각자의 소녀와 각자의 소나기를 직접 맞던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립다. 추한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