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추억 속으로
어린 시절, 대중목욕탕은 우리 동네의 활기 넘치는 사랑방이었다.
나도 가끔씩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가야만 했지만, 사실 그곳이 마냥 좋았던 건 아니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가 여탕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지만(물론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법적으로 만 4세 이상의 아동은 성별이 다른 목욕탕에 출입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내게는 늘 어색하고 불편한 공간이었다.
간혹 젊은 아주머니들이 내 출입에 대해 못마땅해하시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
어쩌면 어머니께서 나의 나이를 속이고 데려가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여탕에 갔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날도 아무 생각 없이 탕 안에 들어섰는데, 맙소사, 동창 여학생을 만난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발가벗은 채로 마주한 그 상황은 어린 나에게 엄청난 창피함을 안겨주었다.
그 동창도 놀랐는지 곧바로 자기 어머니에게 일러바쳤고, 그 애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께 따지듯이 말했다.
"이렇게 다 큰 애를 여탕에 데리고 오시면 어떡해요! 너무하신다. 여기는 나이 확인도 안 하나요?"
우리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듯 들은 척도 안 하셨지만, 결국 목욕탕 주인이 와서
"오늘까지만 봐드리는 거고, 다음부터는 출입이 안 됩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머니와 함께 여탕에 가는 일이 없었다.
목욕탕에 갈 일이 생기면 어머니는 입구에서 지나가는 어른을 붙잡고 내 때를 밀어달라고 부탁하시곤 했다. 물론 나는 대부분 물장구만 치다 나오는 것이 일쑤였지만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간 기억이 없다. 여러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아버지와 함께 살지도 못했고, 목욕탕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흔한 부자(父子)의 모습도 경험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나는 아들과 함께 목욕탕을 찾았다. 아들과 목욕탕에 가는 것은 거의 모든 아버지들의 로망이 아닐까 싶다.
아들이 훌쩍 커버린 지금은 서로 때를 밀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함께 목욕탕에 가서 추억을 나눈다.
그렇게 목욕탕에 갈 때면, 종종 아빠 손을 잡고 남탕에 들어서는 어린 여자아이들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렇게 정겨운 대중목욕탕들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던 목욕탕이 이제는 손에 꼽을 정도다.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목욕탕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비단 목욕탕뿐만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너무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하고 사라지면서, 과거의 소중한 추억들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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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