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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판단 대신 따뜻한 존중으로

배려심 많은 어린 친구들처럼

by 시절청춘

어린 시절의 나는 몸이 꽤 약했다. 아니, 당시엔 미처 알지 못했던 병을 안고 살고 있었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서 덕선이네 반 반장이 갑자기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던 장면을 보다가, 문득 나의 오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덕선이가 친구의 아픔을 가려주려 문을 닫고, 양호실에서 깨어난 반장을 아무렇지 않게 맞아주던 친구들의 모습은, 내 어린 날의 아픈 기억과 묘하게 겹쳐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어릴 때 곧잘 정신을 잃곤 했다.


놀라서 기절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한창 뛰어놀다가 정신을 잃는 일도 잦았다. 때로는 학교에서 쓰러져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이렇다.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너무나 어지럽고 아파서 비명과 신음을 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집이었다. 누나가 내 손을 꼭 잡고 있었고, 친구들이 나를 업고 집에 데려다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에도 몇 번 그런 증상이 있었지만, 그만큼 심했던 적은 드물었다.


중학생이 되어 학교에서 쓰러진 적도 있었다.


그날은 하필 시험 기간이었다.


눈을 뜨니 양호실이었고, 어머니가 내 옆에 앉아 계셨다.


그 길로 종합병원에 가서 뇌 CT를 찍는 등 여러 검사를 받았다. 그때 들었던 병의 원인은 ‘머리에 멍이 들어서’라는 다소 모호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내가 간질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중학교 이후로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나의 아픈 모습을 보았던 친구들은 측은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동시에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었다. 그 무심한 듯 따뜻한 시선이 어린 내게는 큰 위로이자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오로지 일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가면서 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된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약점이 될 수 있는 불필요한 이야기들, 예를 들어 건강이나 가정사 같은 개인의 영역과 관련된 사적인 이야기들까지도 듣게 된다.


이는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것들인데도 말이다.


심지어 관리자급끼리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전달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처럼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러한 사람 관련된 인수인계를 하지 않는다. 듣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사람에게 생기는 선입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모되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나 상사의 입장에서는 직원의 성향을 미리 파악하면 업무를 부여하기 편리할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사람에 대한 인수인계는 능력적인 분야에 대한 것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사적인 영역에 대한 인수인계는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친구의 아픔을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대해주던 그때 그 시절의 따뜻한 감정을 떠올려본다.


불필요한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필요한 감정을 담아 사람에 대한 그릇된 판단을 하게 만드는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어떠한 사연으로 인한 아픔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면, 그 또한 내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필요는 없다.


당사자가 스스로 말을 하기 전까지는 남의 일에 과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남의 아픔이나 상처, 또는 개인적인 문제들이 타인의 가십거리나 이슈가 될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처럼, 당신이 그 입장이 된다면 어떨까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불필요한 문제들은 자연스레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




타인의 아픔과 사적인 영역은 존중받아야 하며, 불필요한 정보는 선입견을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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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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