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군인 그리고 나의 아내
어쩌면 나의 아내와 군인이라는 직업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나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이 두 가지가 필연처럼 얽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 같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육성회비조차 제때 내기 어려울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당시 어린 나의 생각으로는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공업계 고등학교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군 위탁 장학생 제도였다.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도 신체검사까지 모두 통과하며 3년간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고, 졸업 후 나는 하사로 임관하며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운명의 시작이었다.
군 생활에 한창이던 어느 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펜팔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노래책 뒤편에 펜팔 주소가 적혀 있었고, 함께 근무하던 후배와 함께 내기를 걸고 각자 세 명에게 편지를 보냈다.
며칠 뒤, 첫 답장이 도착했다.
다소 쌀쌀맞은 듯한 문장이 적힌 엽서였다.
"펜팔이 하고 싶으면 기본적인 사항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기본매너 아닌가요?"
다음 날에는 다른 여성에게서 정성 가득한 편지가 도착했지만, 그 편지는 후배에게 양보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엽서의 주인공에게 정성스러운 소개 글과 함께 미안함을 담아 다시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해서 연락하게 된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내다.
훗날 아내는 내 편지가 자신의 생일날 도착해서 버리지 않고 답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농담처럼 "그때 버렸어야 했는데..."라며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이렇게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이 나의 또 다른 운명의 시작이었다.
아내와 3년 정도 연애했지만, 당시 나는 5년 6개월의 단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할 생각이었다.
장거리 연애와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서로의 입장 차이로 잦은 다툼 끝에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한 달 뒤, 아내가 나를 찾아와서 우리는 극적으로 화해를 했다. 그리고 그날 나의 직업에 대해 아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솔직히 군 생활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공무원인 직업군인을 소개할 수는 있어도, 일용직 일을 할 사람을 제 배우자로 소개할 수는 없어요. 오빠가 누나한테 이용당하는 것 같아요."
전역 후 누나의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나의 계획은 아내에게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아내의 진심 어린 대답에 나는 깊이 고민했고, 결국 아내의 말을 따라 가능하다면 군 생활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나의 또 다른 운명, 즉 직업군인으로서의 삶을 지속하겠다고 선택하게 된 계기였다.
아내와의 약속 후, 나는 인사를 담당하는 선배를 찾아가 군 생활을 계속할 방법을 물었다. 당시 나는 이미 전역 명령이 발령된 상태였다. 하지만 선배는
"진짜? 진짜 할 거야? 알았어. 내가 해결해 줄게. 너 정말 잘 생각했다. 오늘 술은 내가 살게."라며 흔쾌히 도와주었고, 며칠 뒤 거짓말처럼 전역 명령이 취소되고 장기 복무까지 선발되었다.
그렇게 나는 군인의 길을 계속 걷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혼인신고를 하며 본격적인 부부 생활을 시작했고, 그 후 35년을 한결같이 군대에서 근무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학비 때문에 군 위탁 장학생을 선택했고, 무료함을 달래려 한 펜팔이 아내를 만나게 했으며, 아내의 조언이 나의 직업을 결정하게 했다.
이 모든 운명적인 연결고리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나의 삶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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