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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세 번째 직업의 의미

45. ​직업이 주는 하나의 은혜

by 시절청춘

누구에게나 직업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서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내 인생에는 세 개의 직업이 있었고, 그중 두 개는 6개월을 채 버티지 못했다.

그때마다 '끈기가 부족하고 한 가지 일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내 천성 때문인가?' 하고 자책했다.


물론, 두 번째 직업은 사실상 반강제로 그만두게 됐지만, 그럼에도 그 짧은 경험은 나를 '늘 진득하게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듯했다.

세 번째로 선택한 직업은 직업군인이었다.

당시 상황이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

처음부터 오래 복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기본적인 의무복무만 마치면 망설임 없이 전역할 작정이었다.

나를 아는 친구들과 함께 훈련받았던 동기들조차 '군 생활은 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단언했었다.

사소한 불합리함에도 참지 못하는 성급한 성격에, 때로는 다혈질적인 기질까지 보였으니 그들의 판단도 무리가 아니었다.


예상대로 의무복무 막바지에 나는 전역지원서를 제출했고 전역 명령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 결정은 곧 번복됐다.

당시 내 애인이자 지금의 아내가 한 말 때문이었다.

"직업군인으로는 당신을 우리 집에 데려가 당당히 소개할 수는 있어도, 뚜렷한 직장도 없이 그냥 친척 집에서 일을 돕는다고 소개하기는 어려워요."

이 말이 나를 다시 군복 안으로 묶어두었다. ​


사람들은 흔히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내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대상이 타인이기 때문에 쉽게 말하는 것 같다.

반대로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는 대기업이나 국가공무원, 공기업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장을 원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자신의 직업에 전념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멀리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큰 은혜라 말할 수 있다. 인생이나 생활에서 우울한 일을 당했을 때, 익숙한 직업에 몰두함으로써 현실의 문제가 초래하는 압박감과 근심에서 벗어나 조용히 물러서 있을 수 있다. 힘들면 도망쳐도 상관없다.
(중략)
자신에게 주어진 직업에 몰두함으로써 걱정거리에서 멀어져 있는 동안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달라진다.
超譯 니체의 말 (p.70)


내가 20년 가까이 직업군인으로 살던 어느 날, 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갔었다.

내 직업과 계급을 확인하더니 신용대출로 6천만 원 정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큰돈이라며 좋아했지만,
직업에 따른 사회적 차별을 실감하게 됐다.

아는 사람이 변호사 자격을 얻자마자 1억 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아,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구나. 오랜 기간 쌓은 신용은 소용없고, 직업 자체가 신용이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은행거래를 해본 적도 없던 친구가 변호사가 되었다는 이유로 20년간 성실히 일한 내가 받은 대출보다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세상의 이치임을 새삼 깨달았다.


직업의 필요성과 직종의 선택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 또한 개인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직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마도 다른 무언가에 몰두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직업은 필수적이다.

직장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자영업도 일종의 직업이 될 수 있으며, 능력이 된다면 스스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도 좋다.

나는 안정적인 삶을 원했기에 이 직업을 지금까지 유지해 왔고, 어쩌면 이것이 내 천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만큼의 경제적 보상이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젊었을 때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시 선택의 기회가 온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같은 길을 선택할 것이다.

결국 이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게 만드는 여정이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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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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