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26
사람은 흔히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믿는 순간,
그 자리가 곧 자신의 능력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는 순간,
그 믿음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지금의 직업을 가지고 약 20년이 흘렀을 무렵,
나는 오랜 시간 근무하던 지역을 떠나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처음 시작한 지역에서 끝까지 근무하며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으로 인해,
이동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어버렸다.
당시 나는 같은 직급 내에서 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지휘관으로부터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시기였다.
어쩌면 진급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스스로도 가장 자신감이 충만했던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맡고 있던 역할이 필수 인원으로 분류되었던 터라,
처음 이동 계획이 나왔을 때 지휘관은 상급부대까지 찾아가
교류 유예를 적극적으로 건의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6개월간의 교류 유예는 받아낼 수 있었지만,
아무리 일선 부대에서 필요하고 뛰어난 인원이라 해도
전체 정책 앞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전년도에 진급 서열을 양보했던 선택이 후회로 남기 시작했고,
준비하던 시험마저 탈락하며
나는 전방으로 갈 날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그 무렵, 한 편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아이돌 출연 위주의 드라마라는 선입견 탓에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작품,
"드림하이"였다.
그러다 우연히 한 장면을 보게 되었고,
그 장면 속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귀에 들어왔다.
“노래 좋네.”
그 정도의 인상만 남긴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시간은 흘러,
나는 결국 전방으로 교류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내가 처음으로 좌절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마주한 시간이었다.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사람이었나?’
‘정말 필요 없는 인력이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6개월의 교류 유예 기간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내가 간다는 사실을 잊고 있던 인사팀,
그리고 이미 다른 인원에게 넘어가 버린 보직.
나는 도착하자마자
책상도, 전화기도 없는 상태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정해진 업무도 없었다.
“곧 다른 사람이 떠날 예정이니,
그때 그 보직을 맡으면 된다.”
그 말만 반복해서 들을 뿐이었다.
일이 없으면 편할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 40대 초반,
일에 가장 몰입하고 싶었던 나에게 그 시간은
견디기 힘든 공백이었다.
군 생활을 처음으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숙소도 나오지 않아 주말부부 생활이 이어졌고,
중학생이 된 아들은 문제를 일으켜 학교에 불려 가는 일도 생겼다.
어머니의 병원비 부담도 점점 커져가던 시기였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일을 조금씩 도와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고,
곧 떠난다던 인원은 떠나지 않은 채 계속 근무를 했다.
답답함은 날이 갈수록 쌓여만 갔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숙소가 나오고,
가족은 이사를 했다.
어머니 역시 더 이상 먼 요양병원에 모실 수 없어
집으로 모셔오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부대 내 간부 한 명이 전역을 하면서
그의 업무를 내가 맡게 되었다.
비로소 일이 생기자
숨통이 조금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약 1년을 근무한 뒤,
나는 다시 수도권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보직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 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 능력을 보여줄 자리와 타이밍이 없으면
평가는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
그 시기는
내가 그 사실을 가장 뼈아프게 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준 노래가 있었다.
드라마 "드림하이"의 OST,
김수현의 〈Dreaming〉.
이대로 끝내는 건 아닐지
두려움이 날 자꾸만 망설이게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멈추지 않는 울림이 날 앞으로 이끌죠
한 걸음 한 걸음 오늘도 조심스럽게 내디뎌요
가슴 가득히 두려움과 설레임을 안은 채
비틀거리고 흔들려도 난 또 한 걸음을 내디뎌요
언젠가 만날 내 꿈을 향해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을
다시 붙잡아 주었던 노래였다.
한때는 내가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익숙한 자리에서
익숙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능력은
이미 그 자리를 선점한 사람들의 몫이 될 수 있고,
보여줄 기회가 사라지는 순간
아무리 뛰어난 능력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나 교류를 통해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으며,
지금 맡은 일이 언젠가는
다시 나를 증명해 줄 기회가 된다는 것.
그곳에서의 경험은
몇 년 뒤,
나를 다시 인정받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사소해 보이는 일도
보잘것없어 보이는 역할도
결코 허투루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 시간은 분명히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조용히 견디게 해 주었던 노래.
지금도 힘이 들 때면
나는 그 노래를 가끔 불러본다.
익숙함이 무너진 자리에
성장이 들어온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시간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다시 쓰기 위해 비워둔 자리였다.
능력은 익숙함 속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버텨낸 시간 속에서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