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노래는 시(詩)와 에세이이다

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27

by 시절청춘

노래 가사를 듣다 보면,
한 편의 시를 읽는 것 같고
어느 순간에는 조용한 에세이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노래라는 것은 보통 멜로디가 좋아서 흥얼거리며 듣게 된다.
하지만 가사가 뒤따라주지 않으면, 그 노래의 가치는 오래 남지 못한다.
반대로 가사는 좋은데 멜로디가 마음에 닿지 않으면,
대중의 사랑보다는 소수의 마니아층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늘 듣던 노래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그 가사가 가슴 깊은 곳을 울리며,
마치 지금의 나를 위해 쓰인 문장처럼 느껴질 때다.


나에게는 이승철의 '네버엔딩 스토리'가 그랬다.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버전으로도 듣던 곡이었지만,
‘우리들의 발라드’에서 최은빈 가수가 부르는 모습을 보고
전혀 다른 울림이 찾아왔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늘 흥얼거리며 불렀던 이 구절이,
가수의 사연과 진심을 함께 듣게 되자
단순한 노랫말이 아닌 시적 문장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내가 오랫동안 그려왔던
‘종이책 출간 작가’라는 꿈 역시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youtu.be/fngpr2wnxxw?si=gkLUEvxFyPcr42aF


이처럼 노래는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도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과 상황에 맞닿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 어떤 명언이나 격언보다도
노래 한 곡이 더 큰 울림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이유다.


예전 조용필 가수님의 히트곡들을 떠올려보면,
항상 김희갑 작곡가와 양인자 작사가의 이름이 함께 있었다.
음악가 부부였던 두 분은
조용필 가수님의 젊은 시절 히트곡 대부분에 참여했고,
우리나라 수많은 가수들의 명곡에도 이름을 남겼다.
무려 3,000곡이 넘는 히트곡을 만든 분들이다.



그 많은 노래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곡이 하나 있다.
군 입대를 앞두고 들었던 노래,
LP판 한 면 전체에 오직 이 한 곡만 수록된 작품이었다.


러닝타임은 19분 56초.
조용필 10집 Part II 음반의 B면을 온전히 채운 곡,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오늘 아침 내가 행복한 이유는 이런 거지
오늘 아침 내가 서러운 이유도 그런 거야
청춘이 아름답다 하는 것은 환상이지 환상이라야 해
지금부터 시작되는 시간들이 최상이 되어야지 음
(중략)
내가 항상 옳은 건 아니지만
주는 것만 옳다곤 않겠네
희망보다 항상 어려운 것은 체념이야
(중략)
배는 물살을 갈라 물방울을 만들고
바다는 그 물방울을 다시 바다로 만든다
한낮의 태양은 우리의 살갗을 뜨겁게 태우고
방향을 모르는 바람이 우리를 졸립게 한다
(중략)
우리는 모두 운명이 직결된
공동의 배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암초에 부딪혔을 때 우리의 운명은 언제나
하나로 직결돼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이 세상 어린이가 가지는 첫 번째 꿈
어린 시절 내게도 그런 꿈이 있었지
그때 나는 행복했었지
같은 꿈을 꾸면서 자랐는데 가는 길은 왜 달라졌나
(중략)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낭랑한 물소리
작은 난로 위에 끓고 있는 보리차 물주전자
햇볕이 가득한 마당에 눈부시게 널린 하얀 빨래
정답고 따뜻한 웃음 속에 나는 왜 눈물이 나나
언제라도 나는 변명 없이 살아가고 싶었네
언제라도 나는 후회 없이 떠나가고 싶었네

대문밖을 나서는 남자의 가슴을 겨냥한 활시위
그렇더라도 나는 갈 수밖에 없네 신비한 저쪽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중략)


https://youtu.be/78t7e6gChkM?si=NGot3BIcsJd8GGOw


대중가요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낯설고,
노래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까운 곡이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시절의 나는 이 노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게 과연 노래일까,
아니면 실험에 가까운 시도일까 하는 의문만 남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힘든 날이면
이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곤 했다.


조용필 가수님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내레이션을 듣고 있으면
가사가 머릿속에서 장면처럼 펼쳐졌고,
나는 조용히 그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금도 가끔 이 노래를 찾게 되지만,
긴 러닝타임 때문인지 미리 듣기만 가능한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 남는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준 울림을
더 깊이 확장해 준 노래.
비록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문장들은
나를 조용한 사색으로 이끌어 주었다.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이상한 노래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가사를 지닌
한 편의 에세이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알게 된다.
노래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 노래를 받아들이는 나는 계속 변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가사의 의미가 지금에야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노래는 귀로 듣는 음악이 아니라,
어느 순간 마음으로 읽게 되는 시(詩)이자 에세이다.
월,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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