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 곡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나

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25

by 시절청춘

노래를 듣다 보면,
그 노래를 처음 들었던 순간의 공기와 표정,
그리고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지가
어렴풋이 되살아난다.


노래는 시간을 건너
기억 속의 나를 데리고 온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고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버텼는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사랑에 관한 노래를,
이별을 겪었을 때는 이별을 노래한 곡들을 유독 많이 듣고 부르게 된다.


그리고 삶의 단계가 바뀔 때마다,
이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노래가
어느 날 문득 깊게 꽂히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다소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인식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늘 슬프거나 우울한 노래들을 더 많이 찾았다.
가사가 슬프든, 멜로디가 슬프든 상관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노래들에 쉽게 끌렸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전학을 갔다.
당시의 나는 내성적이었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다.
친구를 잘 사귀지 못했고, 몸도 약해 자주 아팠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눈에 띄는 장점도 없는
그저 조용히 학교와 집을 오가던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싸움을 잘하지도 않는
늘 중간쯤에 머물러 있던 그런 아이.


중학교에 올라와 한동안은 김범룡을 좋아하던 친구와 친하게 지냈지만,
중2가 끝나갈 무렵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친구들 무리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동네가 달랐던 친구보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과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같이 지내게 된 식이와 정이, 그리고 나.
셋은 거의 매일 붙어 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정이와 나는 키와 체형이 비슷해 형제 아니냐는 말을 자주 들었고,
집도 길 건너에 있어 늘 함께였다.
식이는 우리보다 키가 조금 더 컸고, 싸움도 곧잘 했다.
학교에서 손꼽히는 싸움꾼이었지만,
처음의 인상과 달리 속은 참 괜찮은 녀석이었다.


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다 몰래 빠져나오기도 하고,
밥을 먹으러 함께 다니며
셋은 진짜 ‘삼총사’처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만의 주제가를 하나 정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내가 한 곡을 제안했고,
둘은 내 노래를 듣고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노래를 둘에게 가르쳐 주었고,
우리는 거의 매일 그 노래를 부르며 다녔다.
그 곡은 곧 나의 18번이 되었고,
당시 가요톱텐에서도 1위를 했던 노래로 기억한다.


시간은 흘러
우리는 고등학교를 거치며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주제가도
내 기억 속에 남은 노래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 노래는 오래도록 내가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던 곡이 되었다.
어느 날, 아내와 함께 노래방에 갔을 때도 무심코 그 노래를 불렀다.


몇 번 노래를 듣고 있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말했다.
“이 노래… 부르지 마.”


가사를 들을수록 기분이 좋지 않고,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는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이 노래의 가사를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을 계기로 다시 가사를 곱씹어 보니,
음이 연상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송골매의 "하늘나라 우리님"이었다.


하늘은 매서웁고 흰 눈이 가득한 날
사랑하는 님 찾으러 천상에 올라갈재
신벗어 손에 쥐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곰비님비 님비곰비 천방지방 지방천방
한 번도 쉬지 않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버선 벗은 발이랑은 쓰리지 아니한데
님 그리는 온 가슴만 산득산득하더라
님 그리는 온 가슴만 산득산득하더라


https://youtu.be/1Nu068IPozs?si=K5zA6huhc2DPWCvq


이 노래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지만,
결국은 님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라고 한다.


그럼에도 아내는 끝내 그 노래를 불편해했고,
그 이후로 나는 이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게 되었다.


지금 이 노래는
내 어린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이 문득 그리워질 때
조용히 떠오르는 기억 속의 노래로 남아 있다.




어떤 노래는
지금의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분명 필요했던 노래였다.


부르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 노래가 있는 것이다.



노래는 지나간 시간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하게 만든다.
월,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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