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 일과 삶, 책임과 나 사이에서
제 인생의 전반전을 돌아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며 내색하지 않았던 부끄러운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밸'을 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적당한 휴식과 여유가 있어야 업무 효율도 올라간다는 사회적 공감대 덕분에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었고, 퇴근 후에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온전한 개인의 시간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날의 저는 어땠을까요.
세상이 주 5일 근무를 외칠 때도, 저는 제 안의 욕심과 책임감에 쫓겨 거의 매일같이 사무실을 지켰습니다.
일 중독자처럼 업무에만 매진하느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쓰러져 잠들기 바빴고, 어쩌다 일찍 들어오는 날엔 소주 한잔으로 피로를 씻어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자연스레 저는 참 무심한 아빠였습니다.
가족과 오붓하게 여행을 떠나본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아내와 단둘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와 해외를 가본 것도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인 50줄에 접어들어서야 처음 해본 일이었습니다.
아들이 자라나는 소중한 순간들, 예쁘게 애교 부리던 모습들도 제 눈에는 잘 담겨 있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어린 아들을 혼자 목욕탕에 보내면, 직장 동료들이 대신 씻겨주곤 했을 정도니까요.
특별히 다정하게 대해준 것도 없는데, 여전히 아빠를 좋아하고 잘 따라주는 아들을 볼 때면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제 가슴을 가장 아프게 찌르는 것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입니다.
저는 업무를 핑계로 맞벌이를 하는 아내에게 육아와 가사를 전담시켰습니다.
심지어 나중에는 편찮으신 어머니까지 집에서 모시게 했지요.
저는 밖으로 겉돌기만 했고, 아내가 어머니의 쉽지 않은 병수발을 들며 얼마나 홀로 속앓이를 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께 정성을 다하는 며느리보다 밖에서 돈 버는 아들이 더 고생한다며 아내의 서운함을 키우셨지만, 정작 남편인 저조차도 아내의 고단함을 안아주지 못했습니다.
"고맙다, 참 고생이 많다."
그 흔하고 당연한 말 한마디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제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니 아내도 당연히 알아주겠거니 하는, 지독히도 이기적인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밖에서는 일 잘한다고 인정을 받았을지 몰라도, 가정에서의 저는 0점짜리, 아니 그 이하의 무심한 가장이었습니다.
얼마 전, 아내가 무심코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젊은 시절 우리가 여행 한 번 제대로 다니지 못한 건, 당시의 바쁜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결국 저 스스로가 가족과 어딘가를 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요.
부정할 수 없는 뼈아픈 정답이었습니다.
양가 본가에 다녀오는 것을 여행의 전부라 여기며, 저의 직업과 책임을 지킨다는 명목 아래 가장 소중한 가정을 철저히 등한시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제 인생 전반전의 가장 뼈아픈 후회이자 안타까움으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늦었다고 깨달은 지금이, 어쩌면 가장 빠른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제 인생의 후반전은 철저히 '가족'을 향해 뛰고 싶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 여행도 다니고, 함께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담으며 전반전에 다하지 못한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채워나가려 합니다.
무너졌던 삶의 균형을 이제야 다시 맞춥니다.
조금 늦었지만, 가정이라는 가장 따뜻한 베이스캠프에서 제 사람들에게 충실한 사람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겠습니다.
가장 늦었다고 깨달은 순간이, 가족에게 돌아가는 인생의 출발점이다.
《노사연 -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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