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남은 사람들

관계 ―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by 시절청춘

오랜 세월을 보내며 참으로 수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길게는 35년 지기부터 짧게는 알게 된 지 채 1년이 안 된 인연들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이 고맙게도 여전히 제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흔히들 직장이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을 두고, 그 시절이 지나면 흩어질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부릅니다.

그 말이 맞을 때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군요.
제가 처음 군 생활을 시작할 때 유난히 저를 아껴주셨던 선배님은 작년에 무려 30년 만에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얼굴엔 주름이 깊게 패었지만, 다정한 말투와 목소리는 예전 그대로여서 어찌나 반갑고 뭉클했는지 모릅니다.

그뿐인가요. 저보다 먼저 전역해 사회로 나간 후배들도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줄 알았는데, 우리의 인연은 시절을 넘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아직 현직에 남아 있어서, 혹은 상위 보직에 있을 때 그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나름의 확고한 생활신조 덕분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 신조는 바로 '적을 만들지 말자'입니다.


사실 제가 처음부터 이런 원만한 성격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의 저는 오히려 적을 참 많이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 싫으면 얼굴에 바로 티가 났고, 혈기와 영웅심리에 휩싸여 '이건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판단되면 앞뒤 재지 않고 들고일어나곤 했습니다.

융통성 없는 그런 태도 탓에 따돌림을 당하거나 무시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렇게 뾰족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아내가 건넨 조언 한마디가 저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당신, 굳이 적을 만들지 마세요. 모두를 친구로 만들 수 없다면, 그냥 일로 만난 동료로서만 대하세요. 등 뒤에서 비수를 꽂는 건 결국 당신이 만든 적이니까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조언을 따르기가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사람과 어떻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부단히 노력하고 연습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를 적대시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주변에서 저를 향한 긍정적인 평가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간혹 본인을 돋보이게 하려고 저에 대한 헛소문을 내는 이상한 사람도 있었지만, 서너 달만 겪어보면 진실이 아님을 모두가 알게 될 만큼 제 인간관계의 토대는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일하는 방식도 바꿨습니다.

남들이 꺼리는 궂은일을 먼저 맡았고, 동료들이 힘들어하면 팔을 걷어붙이고 도우며 '우리는 한 팀'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얼마 전, 제 첫 시집 출간 기념 북토크에 찾아왔던 중년 남성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바로 이 시기에 저와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저에게 혼도 참 많이 났던 병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잊지 않고 찾아와 응원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저는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떠나면 관계도 끝난다는 생각, 시절인연은 결국 스쳐 지나간다는 생각은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다루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굳이 적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 잘되도록 돕는 것은 내 살을 깎는 노력이 필요할 만큼 어렵지만, 그 사람이 잘못되도록 발을 거는 것은 참으로 쉽고도 허망한 일입니다.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어차피 여기 떠나면 안 볼 사람'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인연이란 생각보다 질기고 깊어서,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마주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훗날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을 때,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악수하고 차 한잔 나눌 수 있도록, 오늘 내 옆자리의 동료에게 먼저 따뜻한 눈인사 한번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요?



누군가를 돕는 것은 어렵지만 넘어뜨리는 것은 한순간이기에, 내 곁을 스쳐 가는 인연이라도 결코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선희 - 인연》

https://youtu.be/Z7y0JYQvZAY?si=7U9BzNQ9dqk-L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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