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어제저녁의 술자리는 막혀있던 내 마음의 댐을 조금이나마 허물어준 시간이었다. 다소 달게 느껴지던 소주잔을 기울이며 마주 앉은 얼굴들은, 직장이라는 다소 딱딱한 울타리 안에서도 묘한 편안함을 주는 이들이었다.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 술기운과 함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스스로 고립을 자처했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잘못된 후배에게서 받은 작은 상처 하나로 시작된 핑계가, 주기적으로 이어져 왔었던 정기적인 만남마저도 그만두게 했었으니, 어제의 자리는 꽤나 오랜만의 해후였던 셈이다. 지금은 나 스스로가 굳이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 또한 섣불리 술자리를 제안하지 않고 있다. 혼자만의 어설픈 자존심인지, ‘후배에게 먼저 술 마시자고 하지 않는다’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 개인적인 원칙 하나를 고집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인 것이다.
어제의 술자리에서는 그간 꾹꾹 눌러 담았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힘든 시기에도 나를 믿어주었던 그의 따뜻함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깊은 위로로 남아있다. 그런 그가 곧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한다. 꽤나 오랜 시간, 때로는 철없는 후배처럼, 때로는 속 깊은 친구처럼 지내왔기에, 그의 부재는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쉬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은 세상의 순리라지만, 왜 유독 마음 가는 사람들과의 이별은 이리도 속절없이 찾아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남은 사람들을 덜 좋아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어쩌면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엇갈림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인연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감정과 깊은 교감을 나누었던 이와의 이별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인연의 끈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항상 품고 있다.
얼마 전 아내와 문득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만약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예상치 못한 일도 없이, 스스로 계획한 대로만 흘러간다면 삶이 과연 재미있을까?” 되짚어보면, 완벽한 계획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삶은 어쩌면 밋밋하고 건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난일지라도, 삶의 적절한 굴곡들이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작은 행복들이 삶의 의미를 더 깊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까.(물론, 그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 만큼의 고난이 생기면 안 되는 거겠지만..)
어제의 술자리에서 시작된 인연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인생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여정이라는 의미까지 확장되었다. 모처럼 주어진 하루의 휴식, 이런저런 생각들을 끄적여 보게 되었다.
인연도 인생의 굴곡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고 반복되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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