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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부꾸미 Jan 16. 2022

오늘도 치킨을 먹었습니다

결혼생활이란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라고 물으면 10번 중 8번은 남편은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거린다.

"치킨 먹고 싶구나?"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눈을 반짝인다.

"……응!"


치킨이 그렇게도 좋을까. 남편과의 첫 데이트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부터 치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회사 선배였던 남편과의 첫 데이트 날, 당연히 파스타 같은 것을 먹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며 가게 몇 개를 알아보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뭐 드실래요?"

"치킨이나 먹을까요?"

띵~ 치킨이나 먹자니. 그것도 저렇게 무심하게. 데이트라고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까탈스러운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아 그냥 그러자고 하고 눈앞에 보이는 정말 아무 치킨가게로 들어갔더란다. 그렇게 치맥을 먹은 뒤, 남편(당시 회사 선배)은 그냥 바로 헤어지려는 것이었다. 이 사람 정말 나랑 치킨 먹으려고 만난 건가. 답답한 나는 커피 한잔 마시고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그렇게 나를 전혀 여자로 생각하지 않는 줄 알았던 남편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내게 연락을 해왔다. 나중에 그때 왜 치킨 먹자고 했냐고 물었더니 '그게 뭐 어때서'라는 반응이었다.

"첫 데이트 때 먹을 음식은 아니잖아!"

"왜? 치킨 맛있잖아. 치킨은 언제나 옳아."


그렇게 시작된 치킨과의 인연. 남편을 만나기 전의 나는 치킨을 거의 먹지 않았다. 치킨을 싫어해서라기보다는 관리의 차원에서 어느 순간부터 안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남편(당시 남친)이 치킨을 정말 많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제일 행복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식사메뉴 선택만큼은 남편에게 양보하고 싶었다. 그렇게 결혼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그리고 오늘도 치킨을 먹었다. 남편하고 먹은 닭이 대체 몇 마리일지.


그나마 남편이 내게 맞춰준 게 있다면 후라이드를 먹는 것이다. 내 몸에 대한 약간의 배려로 남편이 치킨을 먹자고 하면 나는 대신 후라이드로 먹자고 한다. 남편은 처음엔 마늘간장맛을 주장하였으나 아예 치킨을 못 먹는 것보다는 후라이드라도 먹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나중엔 순순히 후라이드에 동의했다.


결혼 후 에어프라이기가 생기면서 집에서 닭을 구워 먹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치킨을 건강하게 먹어보려는 나의 노력인데 남편은 그리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남편이 치킨을 먹고 싶다고 하면 생닭을 사올까 하고 물어본다. 집에서 닭을 구워 먹자는 제안이다. 남편은 눈치를 보며 말한다.

"그냥 후라이드 시켜먹으면 안 돼?"

아휴. 오늘은 그냥 후라이드를 시켜먹어야겠다. 다음에 닭을 구워 먹을 땐 소금과 후추를 아끼지 말고 더 많이 뿌려봐야지.


치킨도 다이어트에 좋은 음식이라는 유튜브를 보며, 애써 나를 위로해본다. 그래, 치킨은 탄단지가 골고루 들어있는 건강한 음식이야. 이렇게 서로 맞춰나가는 게 결혼생활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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