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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Jul 01. 2021

여행자의 부엌

집ㅅ씨-목포에서한 달살기 4



새하얀 벽에 짙은 색 나무. 흰색과 베이지 색의 세간살이.

집ㅅ씨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색들이다. 

1년을 훌쩍 돌아온 때에 맞추어 가게에 새로운 색을 더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동네에서 사다리 두 개를 빌려온 뒤 페인트 대신 입자가 아주 고운 흙을 물에 개어 놓았다. 


"진짜 한다? 이제 돌이킬 수 없어!"



새하얀 흰색 벽에 주룩 갈색 물이 흐르고 그 뒤로는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하루 종일 다섯 번이나 벽을 칠해야겠다. 페인트칠의 가장 힘든 부분은 역시 '노빠꾸'인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흙이 꾸덕하게 충분히 올라가자 뭔가 아프리카적인...? 진흙과 뜨듯한 열기가 있는 듯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밖에서 바라보니 왠지 이제부터 아프리카 음식을 팔아야 할 것 같다며 깔깔 웃었다. 개업할 때 만들고 한동안 쓰지 않았던 흙화덕인 '탄두르'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이것저것 생각해 보기도 했다. 아마도 곧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둘 다 일본에서 보낸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경험한 음식들이 자주 얘기되고는 했는데 (웃기지만 대체로 일본 음식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가게에서 내놓을 음식의 방향이 바뀌게 될 것 같았다. 공간과 함께 움직이고 달라지는 맛이라니, 정말 여행자의 부엌다운 일이다. 





일을 끝마치고 같이 목욕탕에 갔다. 



개운하게 씻고 와서 세영은 아보카도 바나나 스무디를 만들어 주었다. 

얼린 아보카도에 생 바나나, 두유, 코코넛 밀크, 설탕을 넣고 비싼 대추야자 대신 건포도 한 줌. 

꾸덕한 스무디 위에 시나몬 톡톡.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이가 시리게 차갑지는 않았고 커스터드 크림처럼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었다. 




이른 저녁에 출출해져서 냉국수를 먹기로 했다. 


통밀국수를 삶아 그릇에 담고,

훈제 멸치와 다시마로 낸 육수에 미소를 풀어 차갑게 식혀둔 국물을 붓고,

오이와 고추와 대파 송송,

보성에서 얻어 온 귀한 제피 장아찌와 가쓰오부시를 고명으로 얹어서 후루룩.



사실 내가 면을 너무 많이 삶아서 먹고 나니 매우 배가 불렀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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