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엥 Jul 03. 2021

오코노미야키의 기억법

집ㅅ씨-목포에서한 달살기 5



냉장고가 작아서 그런가. 


여름이 되면 분명 냉장고에 넣어 놓았는데도 신나게 발효가 진행되는 것이 틀림없다. 

이것저것 조금조금 들어 차 있는 냉장고 안에서 당분이 많은 주스나 콤부차는 보글보글 기포가 일면서 탄산을 머금는다. 뭐, 이건 이대로 목구멍을 때리는 맛이 좋아서 얼음 동동 띄워 시원하게 한 잔씩 마신다. 




옆 집 슬로 카페에서 착즙기를 빌려 짠 비트-배-토마토 주스.





미야자키에서 도쿄로 차를 얻어 타고 올라가던 길에 히로시마에 사는 치하루네 집에 들렀다.


오래된 집을 여기저기 손 봐서 살뜰하게 살고 있는 치하루네는 화덕 스토브가 3개나 있었다. 

온돌용, 간단하게 음식을 데우거나 차를 끓이고 덤으로 빨래도 말리는 용, 그리고 목욕물을 데우는 용. 

화덕 스토브에 연결된 욕조라니. 정말 최고. 



일본식 양배추 전인 오코노미야키는 크게 간사이 풍과 히로시마 풍으로 나뉘는데, 

치하루는 모처럼 히로시마에 왔으니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를 해주겠다며 거대한 철판과 뒤집개를 꺼내왔다.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의 특징은 '두툼함'이다. 양배추와 밀가루 반죽뿐만 아니라 소바면과 달걀까지 층층이 쌓아 올리기 때문에 간사이식보다 훨씬 두껍고 여러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밀가루 반죽을 뜨거운 철판에 붓고 채 썬 양배추를 넉넉히 넣었다. 

반죽이 바삭해지고 양배추가 살짝 익도록 내버려 둔 다음 휘리릭 과감하게 뒤집는다. 과감해야 한다!

오코노미야키를 한쪽으로 밀어 두고 미리 삶아둔 소바를 빠르게 볶는다. 그 위에 다시 얹고 옆으로 치우고. 

취향껏 돼지고기나 버섯이나 해산물을 철판에 얹고 다시 쌓고 마지막으로 계락을 톡 깨서 휘리릭 저어 노른자와 흰자를 섞어준 뒤, 한 번 더 쌓으면 드디어 완성. 과정이 꽤 복잡했다.


송송 썬 파와 생강 초절임, 기호에 따라 소스나 간장, 마요네즈, 가쓰오부시 등등을 뿌려 입에 가득 차도록 넣으면 아작한 양배추와 바삭한 반죽, 여러 토핑의 맛이 섞이며 만족감이 밀려든다. 




건강하고 슴슴한 음식을 내가지만 왠지 오코노미야키 같은 음식은 혀에서부터 딱 때리는 자극적인 맛이 있어야 신이 나니까. 슬로 카페 사장님을 불러서 첫 판을 나눠 먹은 후


"이건 너무 건강한 맛인데.....?"


라는 반응을 반영하여 두 번째 판은 치즈 잔뜩, 바질 페스토 잔뜩 올려서 먹어 보았다. 

놀랍게도 바질 페스토에서 의문스러운 된장 맛이 나서 

문득 호화롭게 올린 치즈 두장이 아까워졌다. 






만드는 모든 요리가 황홀하게 맛있는 것도 참 멋진 일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한 끼에 크고 작게 생겨나는 실수와 이도 저도 아닌 미묘한 맛, 그것까지 포함해 맛있게 꿀꺽 먹어 치우는 순간들도 더없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자의 부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