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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Jul 09. 2021

아프리카식 김치찌개?

집ㅅ씨-목포에서 한 달 살기6

이곳의 아침은 한가하다. 



    집ㅅ씨가 위치해 있는 곳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의 마을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인구가 많이 빠져나간 구도심이 되었다. 매일 아침 환기를 시키며 가게 문을 열고 나가면 오른쪽에 바로 유달산이 보인다. 유달산 자락에 촘촘히 들어선 낡은 집들 중에서 오래전 지어진 일본식 구조의 가옥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뭐랄까, 일본식 가옥은 가느다란 느낌이 든다. 한국식 집이 붓펜으로 그린 것 같다면 일식 가옥은 2B 연필로 그린 것 같은 옅은 느낌이라고 할까. 동네 산책을 하며 담쟁이에 뒤덮여 있거나 녹슨 문을 한 옛날 집들을 찬찬히 구경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나중에 집을 지으면 우리 집은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는 생각들을 꼭꼭 씹으면서.





전날 밥이 많이 남았다. 

밥솥에 깨소금과 참기름을 주르륵 부어서 세영은 주먹밥을 만들어 주었다. 친구네에서 얻어 온 제피 장아찌와 함께 먹었다. 


나에게 '제피'를 처음으로 알려준 친구는 여러 풀들의 이름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어딘가로 슉 사라졌다가 나타나서 민들레며 콩잎이며 산초를 한 움큼 따오던 그에게 먹을 수 있는 풀들을 알려 달라며 졸라서 같이 '풀 워크숍'에 나섰던 기억이 난다. 풀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거슬거슬한 단풍잎 같은 환삼덩굴 잎은 간장조림으로 먹을 수 있고, 칡이나 콩의 여린 잎은 장아찌나 쌈으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별꽃과 민들레, 쇠비름을 짚으며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열매까지 달린 산초나무를 발견했다. 


"산초!"



갓 딴 산초 열매를 으깨면 고수 씨앗 같은 푸릇한 시트러스의 향기- 야생 오렌지 껍질에서나 날 법한- 과 풀냄새, 약간의 매운 냄새가 강하게 끼쳐온다. 추어탕에 뿌려먹던 산초가루에서는 느끼지 못한 신선한 냄새들이었다. 냄새가 너무 좋아서 손에 코를 박고 킁킁 거리며 산초 향 향수가 나오면 참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제피는 산초와 매우 비슷한데 이파리 정중앙에 흰 점이 있다. 향이 약간 더 강하다고 했다. 

아무튼 그런 제피를, 비록 고추장에 맛있게 절여진 채였지만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그리고 맛있었다. 






가게 벽을 흙 색으로 칠한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이번 주 메뉴는 '도모다'였다. 

서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토마토와 땅콩, 코코넛 크림을 넣어서 푹 고아낸다. 

원래는 고기가 들어가지만 잘 불린 콩 코기를 양념해 고기 대신 넣었다. 





여름이지만 따뜻하고 걸쭉한 국물이 뱃속에 들어가니 몸이 사르르 풀리는 느낌이다. 

아프리카 대륙이지만 유럽과 정말 가까운 '튀니지'를 여행할 때였다. 

베드 버그에 된통 물려서 긁지도 못하고 새벽마다 찬물 샤워를 하며 끙끙 앓았다. 

닷새 정도를 호스텔에 처박혀 있다가 드디어 벌레 물린 곳에 딱지가 생기고 가려움증이 가라앉았을 때, 시내에 밥을 먹으러 갔다. 이미 몸과 정신이 너덜거리는 느낌이었고 적당히 포르투갈이나 갈 걸 튀니지에 오자고 고집을 부린 것이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도모 다 와 거의 흡사한 튀니지의 토마토 스튜 '오짜(Ojja)'를 파는 식당이었다. 누군가가 오짜는 김치찌개 같은 음식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혼을 울리는 김치찌개의 걸쭉한 국물이다! 오짜는 국물 음식이라기보다는 가볍고 촉촉한 흰 바게트를 적셔서 먹는 요리지만 열심히 수저로 스튜를 허버 허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따뜻하고 빨간 국물은 언제 어디서든 마음과 뱃속을 데우는 안정감이 있다. 




저녁엔 놀러 온 맥스와 세영과 나 셋이서 태국 바질인 가파오를 넣어 만든 볶음밥을 먹었다. 

태국 고추와 오코노미야키 소스와 태국 바질. 향기는 아주 쉽게 어떤 기억들을 불러일으킨다. 



태국 가고 싶다. 바다에서 수영하다가 밴드 라이브를 보면서 맥주와 팟타이 먹고 싶다. 그러고 비틀거리며 밤거리를 걷다가 자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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