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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Jul 09. 2021

지옥의 가내 수공업

집ㅅ씨-목포에서 한 달 살기 7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먹는 것은?


먹는 일이 언제나 행복하고 맛있고 충만했으면 좋겠는데. 

바쁘고 벅찬 일상을 살다 보면은 그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분명 맛있어야 할 터인데, 진이 쭉 빠진 채로 늦은 밤에 시켜먹는 배달음식은 왜 삼킬 때마다 이렇게 목이 막힐까. 오랜만에 만들어 본 빵은 왜 이렇게 떡이 지고 시큼할까. 열심히 만들어 식탁에 올려둔 음식을 먹을 때는 집이 왜 이렇게 적막하고, 넷플릭스에는 밥 먹을 때 볼만한 적당한 영상이 없을까. 


목포에 내려온 것이 벌써 수 주. 

세영은 아침에 가장 먼저 따뜻한 음료를 내어준다. 

가끔은 차, 피곤한 날에는 커피, 어떤 날은 향긋한 짜이. 

매일매일의 컨디션에 따라 어떤 찻잎을 우릴까 고민하는 것도 좋고, 오늘은 아메리카노와 라떼와 카푸치노 중 무엇이 좋을까 고르는 것도 좋고, 향신료를 진하게 우려서 코코넛 밀크를 넣은 달달한 짜이를 홀짝홀짝 마시는 것도 좋다. 아침에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배가 따뜻해지는구나. 왜인지 화장실도 더 잘 간다. 




손으로 눌러서 두유 거품을 내는 프레스기를 쓴다. 이두박근이 짜릿해지는 카푸치노. 하지만 거품이 훨씬 쫀쫀하다. 



오늘은 가게 메뉴판을 만들었다. 

메뉴가 매일매일 바뀌는 가게여서 지금까지는 필요 없었지만 

여름 동안 밤에 바를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고정적인 메뉴가 정해졌다. 그동안 찍어 둔 사진을 모아서 사진관에서 프린트하고 문구점에 들러서 도화지를 샀다. 가게에서 벗어나 목포에 새로 생긴 인스타 감성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달달한 말차 뺑 오 쇼콜라와 글레이즈드 크로와상을 옆에 두고. 


그리고 시작된 지옥의 수공업. 

어떤 사진을 쓸까 신중히 고르고 잘라서 종이에 붙인 뒤 어떤 설명을 써야 사람들이 주문을 할까, 가격을 얼마로 정해야 합리적일까 고민 또 고민. 결국 4시간이나 카페에 앉아 있었다. 




넉넉히 주문해둔 그린 파파야가 더 이상 그린이 아니게 되기 전 얼른 다 강판에 갈아버린다. 

태국 고추와 어간장, 마늘, 생강을 빻아서 미리 쏨땀을 버무려 둔다. 숙성될수록 더 맛있는 건 김치와 똑같다. 거의 김장하듯이 큼직한 파파야 서너 개를 갈았더니 팔이 후들거린다. 





순창에서 열린 작은 장터에서 사 온 수제 소시지 '살시차'를 올리브유에 볶는다. 양파와 마늘도 같이 넣고 향을 낸다. 채 썬 가지와 짠맛이 덜한 신선한 바질 페스토도 듬뿍 넣고 남은 밥을 볶는다. 채 썬 애호박과 툭툭 썬 토마토를 팬에 올리고 그대로 오븐에 직행. 애호박이 달콤해지고 토마토의 껍질이 달랑거릴 때쯤 꺼내어 후추를 툭툭. 화분에서 바질 잎 몇 개를 따서 얹는다. 이탈리아에서 볶음밥을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까. 


엄청나게 해맑은 어떤 유튜브 가수의 영상을 계속 보면서 싹싹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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