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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Jul 10. 2021

비와 맥주와 피자

집ㅅ씨-목포에서 한 달 살기8

장마가 시작되었나 보다.



비가 며칠 내내 와르르 쏟아졌다.

차양처럼 열리는 유리창  서서 가게 안에 있는 식물들에게 빗물을 쐬어 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손님이 적어지니 요리를 할 일도 없어지는데 빵이 굽고 싶은 날이었다. 습기가 많고 꿉꿉해서 일까? 오븐을 돌리면 집이 조금 건조해지니까.


강력분이 아주 조금 남아 있어서 피자를 굽기로 했다. 밀가루는 생산지와 품종에 따라 빵으로 만들었을 때의 상태가 아주 다른데, 우리나라는 주식이 빵이 아니어서 그런지 우리밀은 유럽의 강력한 밀가루에 비해 부푸는 정도나 글루텐의 함량이 떨어진다. 축축 처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강하게 부풀어 올라야 하는 빵 같은 경우는, 특히 가정용 소형 오븐으로는 만들기가 약간 까다로운 것 같다. 온라인에서 알아볼 수 있는 불꽃의 홈베이커들이 찾아낸 노하우를 꼼꼼히 참고할 것. 보다 보면 베이킹을 하고 있는 건지 화학 공부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지만 그래도 즐겁다.


손반죽으로 글루텐을 잡아서 쫄깃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지만 소화시키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럴 때는 무반죽 법으로 빵을 굽는다. 거기에 더해서 담백한 여름 감자를 삶아서 밀가루 양의 절반 정도로 넣어주면, 끝에 달콤하고 상냥한 맛이 감도는 포카치아를 아주 쉽게 구워낼 수 있다. 필요한 건 기다림뿐.


 



습하고 더우니 반죽의 발효가 매우 빠르다. 발효 속도도 맛에 영향을 끼치므로 원한다면 냉장고에서 몇 시간 가량 아주 천천히 발효시켜도 좋지만 피자는 패스트푸드니까! 얼른 부풀면 부푸는 대로 신나게 토핑을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오븐 팬에 반죽을 엎어서 손으로 살살 잡아 늘려준다. 손가락을 세워서 피아노 치듯이 뽕뽕 구멍을 내서 펼쳐도 좋다.



절반은 올리브 페스토, 절반은 토마토소스. 다진 양파와 슬라이스 치즈를 뚝뚝 떼서 얹고 양념해서 볶은 콩고기도 얹었다. 슬로 사장님이 가져다준 토마토 슬라이스도.


맥주도 빠질 수 없지.

올여름에 처음 먹어본 에델바이스 맥주가 맛있다.





손님이 없는 날이었다.

목포에서 채식 식당을 하는 다른 친구에게서 받아온 가지 밥으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했다.

기름진 가지가 부드럽게 밥알에 녹아있고 간간이 마른 표고버섯이 씹히고 매콤한 고추의 맛과 간장의 향이 도는 음식이었다. 약밥 같은 맛도 나고. 매일 일취월장하는 세영의 그린 파파야 솜땀과 함께 먹으니 딱 균형이 좋았다. 가끔 씹히는 고수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비는 안 맞으면서 비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집에서 꼭 살아야지. 10년 뒤에도 비를 보면서 친구와 피자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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