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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엥 Jun 30. 2021

커리-업!

집ㅅ씨-목포에서한 달 살기 3

    몇 년쯤 전에 인도식 커리 끓이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이 있었다. 


요리책도 유튜브도 아닌, 모닥불 위에 엄청나게 커다란 솥을 걸고 양파를 지글지글 볶으면서 보고 듣는 레시피는 잊어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커리가 완성되자 얼른 메모장에 적어 넣었다. 


그 이후로 커리는 한동안 내가 가장 자주 만드는 음식이 되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커리는 정말 '냉장고 파먹기'에 최고로 적합한 메뉴였다.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시절에 나의 커리 메이킹은 어떤 특이점에 이르렀는데,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털어 넣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재료를 추가하느라 커리 냄비가 바닥을 보이지 않게 된 것이었다. 

다 먹을만하면 새로운 야채를 썰어 넣고 다 먹을만하면 남은 토마토소스를 넣고 하는 식이었다. 나중에는 이게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까 해서 들어갔던 재료를 다 적어 놓기도 했다. 

약 7번의 커리 분화(?)가 이어진 끝에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인해 커리는 결국 상해버렸다. 

아무튼 커리는 대단히 포용력이 좋은 음식임에는 틀림없었다. 






세영은 종종 남인도식 백반인 '탈리'를 내어놓는다. 탈리는 여러 가지 커리와 밥, 처트니 등으로 구성된다.

이 날은 렌틸콩을 뭉근하게 끓인 달 커리와 시금치 대신 고구마순을 넣은 팔락 파니르, 튜머릭과 펜넬을 넣어 지은 노랗고 향긋한 밥, 감자 커리, 복분자와 코코넛을 넣은 도사, 그리고 비트피클 샐러드가 올라갔다. 




커다란 냄비 가득 끓여진 커리가 많이 남아도 괜찮다. 

몇 날 며칠 계속해서 먹지 않아도 커리를 다른 멋진 요리로 만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탈리에 내고 남은 감자커리로 우리는 사모사를 만들었다. 사모사는 인도 등지에서 먹는 만두 비슷한 음식인데, 비슷한 만두니까 피를 따로 빚어낼 필요 없이 시판 만두피를 사용했다. 

통밀 만두피 위에 물기 없이 빡빡한 감자 커리를 한 숟갈 올리고 세모 모양으로 오므린다.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뒤적뒤적해가며 파사삭한 갈색 껍질이 될 때까지 튀겨 접시에 냈다. 





다 먹어가는 비트 피클에 양배추나 당근 같은 채소를 썰어서 다시 넣어두면 선명한 핑크색이 예쁘게 물들었다. 피클은 샐러드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샌드위치 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냉우동 위의 토핑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채 썬 양배추 피클에 피시소스와 마늘 듬뿍, 생강, 레몬즙, 고수, 견과류 등을 빻아서 넣으면 순식간에 동남아의 향기가 배어 나온다. 태국식 파파야 샐러드인 쏨땀에 들어가는 양념인데, 단단한 그린 파파야 대신 양배추나 오이, 혹은 수박껍질을 넣어도 좋다고 했다. 

그날 가게에 놀러 온 누군가가 두고 간 초당 옥수수 반 개도 노릇하게 잘 구워 알맹이를 도로록 훑어내어 쏨땀에 넣었다. 다시 부활한 피클들을 기름진 사모사 옆에 듬뿍 올려서 고수와 청양고추가 들어간 요거트 소스와 함께 먹었다. 





두물머리에 사는 친구 집에는 가스레인지 한켠에 항상 올려져 있는 질 냄비가 있었다. 

친구들은 그걸 '씨 된장국'이라고 불렀는데 매일 밥을 안치며 나온 쌀뜨물을 된장국에 새로 부어 넣고 다시 된장을 풀고 하는 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커리나 피클이나 된장국같이 종종 발견하곤 했던 이런 릴레이는 
내가 먹는 집밥이 하루 또 하루 찬찬히 쌓여나가는 느낌을 주어서,
이런 겹들이 지나온 날들과 먹어온 음식들과 그로 인해 살고 움직이는 나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서,
딱 좋은 정도로 따뜻하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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