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게으르고 느리고 잘하는 게 없는 아이야
중 2 때였던가.
"그 숙제 갖고 와라."
"왜요?"
"엄마가 할게."
"어머니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우리 엄마는 한석봉 어머니의 현대판인가.
학교에서 가사 실습으로 자수 숙제를 내줬다. 꽤 시간이 걸리는 숙제다. 실기점수로 성적에 포함된다고 했다. 포함은 되지만 기본 점수는 다 주니까 말하자면 솜씨 자랑은 아니고 일단 완성이 중요한 숙제다.
"그거 하지 말고 공부해. 이거 하느라 시간 다 뺏긴다."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다들 숙제가 힘들었다고 말한다.
사실 엄마가 도와줘서 고맙긴 했다. 말 그대로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울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번번이 엄마는 시간을 뺏는 숙제는 달라고 하셨다.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하는 엄마다. 재봉, 미용, 자수, 뜨개질, 꽃꽂이... 그것으로 부업을 하실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이들 키우며 같이 밤새 뜨개질도 하시고 꽃꽂이로 나의 학급에 봉사도 하시고 그랬다.
엄마가 숙제를 도와주신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내가 "게으르고 느리고 손재주가 없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게 왜 이렇게 게으르냐, 느리냐, 숙제는 언제 다할래... 이런 말들을 거의 돌려 막기처럼 하셨고 그 말들은 내 뇌리에 콕콕 박혔다.
지금으로 말하면 가스라이팅이라고 해야 할까.
성인 된 후 한참 지나서도 스스로 나는 게으르고 느리고 (그나마 공부 빼고는) 잘하는 게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학벌로 어떻게든 벌어는 먹고살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공부라는 건 민첩성이나 근면성을 꼭 필요로 하진 않는다. 민첩성, 지구력, 융통성, 근면성, 협응력 등등 에서 고르라면 지구력이지 않을까 싶다. 여기 약간의 융통성이 있으면 좋겠지만.
(심지어 울 엄마는 "넌 지구력이 없어."라고 했었다. 책상 앞에 주야장천 앉아있는 내게. 근거는 무엇이지?)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나고 보니 그게 정답인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자마자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지만 일단은 앉기까지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나. 책상에 앉았다면 반은 성공이다.
그렇게 "너를 위해 특별히 샀다"고 하신 유명 가구사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다가, 자다가, 라디오도 듣다 그렇게 공부에 매진했다. 아주 끈덕지게.
심지어 추운 나라에서 훌륭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한다고, 러시아에 훌륭한 문학가, 작곡가, 과학자가 많다면서 테헤란로에 면한 북쪽 방을 내 방으로 정하셨다. 당시 테헤란로 주변에는 고층건물 하나 들어서지 않은, 아니 건물 자체가 거의 없는 시베리아 벌판 같았는데 말이다.
추워야 머리가 긴장되어 공부가 잘된다고.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해야 된다고.
성인 이후 차츰 미몽에서 깨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았지만 여전히 엄마는 나를 그런 아이로 규정하신다.
애 둘을 키워 냈는데도 아직도 '게으른, 느려터진, 융통성 없'는 사람.
거기다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사람.
성인 된 후에는 그래도 잠시 엄마와 나 사이에는 밀월 기간이 있었으나 손주들 초등학교 때부터 간섭이 들어왔다. 본인이 자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왜 안 찾아가냐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다고 게으르다고 무신경하다고 태클이 들어왔다. 시대가 바뀐걸 엄마는 고려하지 않으셨다.
어찌어찌 잘 방어했고 딱 한 번 큰애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께 상품권을 드린 거 빼고는 봉투는 한 번도 지참하지 않았다.
엄마는 다소 문제가 많았던 그때 담임 선생님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진즉에 찾아갔었어야 했다며.
잘하는 게 별로 없는 딸. 모처럼 요리를 해서 갖다 드려도 칭찬을 잘 안 하신다. 선물을 드리면 맘에 안 든다고 바꿔오신 적도 많다. 그나마 엄마 취향에 맞춰 옷을 입고 가면 옷 잘 입었다고 하지만 내 맘대로 입으면 못마땅해하신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엄마의 말과 태도가 어릴 때는 무척 강압적이고 지배적이어서 나의 자존감은 늘 바닥이었고 부족함이 많은 아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그때는 엄마의 시간이었지만 부모의 훈육방식은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의 정체성을 섣불리 규정하면 안 된다.
게으르고 느리고 잘하는 게 없는 아이.
엄마가 게으르고 느리다고 평가한 나의 성격은 객관적인 수치로 측정해서 말할 수도 없는 영역인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게으름이나 느림 내지 둔함은 나의 무욕심을 답답해하시며 표현한 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욕심이 없어서 등수에 연연한다거나 옆집 누구보다 성적이 더 좋아야 한다거나 하는 단전에서 올라오는 자생적 경쟁심이 없는 편이라 엄마는 공부하는 티도 많이 내고 성적에는 예민하고 결과에는 부들부들 떨고 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한편으로 잘하는 게 없는 아이는 사실 달리 말하면 잘하는 게 없어야 하는 아이, 즉 공부 말고 다른 것은 쳐다도 안 보고 관심을 두어서도 안 되는 아이란 뜻이리라.
노래를 남들보다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달리기를 잘하는 것도 아닌 그저 수업 열심히 듣고 외우라면 외우고 풀라면 푸는 아이.
그래도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 턴테이블 정도는 장만해 주셨던, 그저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히며 이용하는 정도의 곁눈질은 허락하셨지만 다양한 과외활동은 한 기억이 거의 없다. 사춘기가 한창이었던 중 2 때 한 번 시도했다가 성적이 뚝 떨어져서 그다음부터는 일탈은 꿈도 못 꿨다.
공부는 때가 있는 법이라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으려면 열심히 하라고.
잘하는 게 없어 공부에 올인한 나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전교 석차가 급상승하게 되고 막연했던 엄마의 꿈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래. 최소 연고대가 목표다.
성적 향성과 함께 나의 자존감도 올라갔고 고 2 겨울 방학에 영어와 수학을 들입다 파고들었더니 고 3 첫 시험에 전교 등수가 쑥 올라갔다. (사실 수학 보다 영어에 몰입했던 결과다. 그때 수학을 소홀히 해서 이후 나는 수포자가 된다. 결과적으로 이과를 포기하고 문과를 택한다.)
독수리냐 호랑이냐 아니면 진리는 나의 빛?
대학 입학시험을 앞두고 비공개 모의고사에서 문과 1등을 기록하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오지 말라고 했건만 엄마는 시험장까지 와서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셨다.
시험이 끝나고 나와서 엄마를 본 순간 울음이 터졌다.
내 예상보다 많이 틀렸던 것이다.
(개인사정으로 다음 화는 28일에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