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사람들

12화사랑이 이모

by 뚜르뚜르라이프

그녀가 멈추지 못하는 이유

후다닥, 후다닥.
그녀를 표현한다면 이 말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
잠시라도 멈추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어색해진다
마치 다람쥐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재빠르게 뛰어다니신다

“이모, 제발 좀 앉아서 쉬어요. 내가 할게요, 내가!”
그렇게 외쳐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마음에 닿은 일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일손을 놓지 못하는 병이 있다.


완벽주의자, 청결주의자 남들은 말한다.
“이모, 그만 좀 쉬엄쉬엄 하세요.”
그녀는 “알았어~” 하면서도 다시 몸을 움직인다.

정말이지 구제불능이다.
그녀의 성격을 바꾸는 건, 어떤 말로도 어렵다.

그래서 이모에게 물어봤다
“이모,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어요?”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때였어.
내가 일 나가고 없던 날… 그날 말이야.
지금 생각해도 너무 힘든 시간이었지.”


그날, 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는데
“아빠, 나 왔어요!”
환하게 인사하며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만 놀라서 비명과 함께 입을 막을 수밖에 없어서

아빠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죽은 듯이, 숨도 쉬지 않고.

딸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지
“아빠! 아빠! 정신 좀 차려보세요!”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119에 전화를 했어
“우리 아빠가 이상해요.
빨리 와주세요.
제발…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수화기 너머 119 상황실 대원의 지시에 따라
딸은 생전 처음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지

박자에 맞춰 아빠의 가슴을 딸은 하나 둘을 셋
손은 떨렸지만, 마음은 단 하나.
‘아빠를 살려야 해.’ 마음뿐이었어

이모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구급차가 안 오는 거야.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막혀 진입이

되고 있었지 환장할 노릇이었지

딸은 울며 불며 수화기를 붙잡고 절규했어
“아빠 좀 살려주세요! 빨리요!”

시계초침은 계속 똑딱똑딱 흘러만가고
아빠 심장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지
딸은 울면서 아빠의 가슴을 힘자게 계속 눌렀지

그리고 30분 후, 숨을 헐떨이며

구급대원 3명이 도착했어
진입노가 막혀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바닥에 있는

환자에게 다가가 숨소리를 듣고 신속하게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를 작동했어

쿵 쿵 가슴이 올라갔다 쿵 하고 다시 올라갔다 쿵



구급대원은 차 안에서도 계속 심폐소생술을 이어갔지

하나, 둘, 셋.
다시 하나, 둘, 셋.
딸은 옆에서 조용히 기도했다.
“아빠, 힘내요… 제발…”

하지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이모는 일을 하다 그 소식을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지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강릉에서 그를 만나 사랑했던 시간,
두 아이와 함께한 소박하고 따뜻했던 나날들이
한순간에 필름처럼 머릿속을 휘저었다.


딸과 아들의 얼굴을 보니
그저 “얘들아…” 하고
눈물만이 흘러나왔지
말 대신… 눈물만이 대답이었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두 아이와 함께 한참을 울었어
그 일이 벌써… 십 년 전 일이네

“이모,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또 그분을 만날래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3년쯤 흘렀을까.
그가 꿈에 나왔다고 했다.

분홍색 셔츠에 베이식색 바지를 좋아했던 그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

둘러싸여 인자한 눈으로 사람들을 보다가
그는 나를 보며 미안하다는 듯 웃었지
‘괜찮아.
나 잘 있어.
당신과 아이들을 두고 먼저 와서 미안해…’
그런 마음이 전해졌어.
그거면 됐어.”

나는 물었다.
“그 이후로 또 꿈에 나오셨어요?”

응 49제를 지내고 꿈에서 봤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어 그리고 천도재를 드렸어

꿈에 큰집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거야

이양반이 그곳에서 좋은 자리에 올랐나 봐

생각하셨대
그게 마지막이었어.”

하지만 이상한 게 하나 있어진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자주 꿈을 뀌셨는데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체가 항상 보이셨데

이모가 출근을 하다 문득 물김치를 담았야겠네 생각에 형님들이 오실 것 같다고 느끼셨데

그 후 장례 끝나고 친척 형님들이 모두 물김치를 다 드시고 가셨다네 그리고
이모는 이상한 꿈을 뀌셨데


기와집 대청마루 앞 디딤돌에
꽃신 한 짝만 있어던거야 이상하다 신발이 어디 있지 찾아보니 지붕 위에 있어다네

그땐 그냥 이상한 꿈인가 보다 했지
그 사람은 허리만 조금 불편했을 뿐
다른 증상은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그 꽃신이 또다시 꿈에 나왔서
이번엔 두 짝이 나란히 디딤돌 위에 놓여 있었고,
이모는 그 신발을 신어봤어 세상에나
너무나 꼭 맞는 거야 신기하게 딱

그래서 이상한 마음에
자주 다니던 절에 들러
스님께 물었보셨데


스님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조용히 말하셨는데
“보살님은… 혼자 살아가야 할 팔자 같네요.”

이모는 그 말을 듣고
덤덤하게 대답하셨는데
네 혼자 살아야지요.

항상 밝은 줄만 알았던 이모.
그녀에게도 이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

사람마다
가슴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가 있다.
누구도 몰랐던,
말하지 않았던,
하지만 결코 잊지 못할 이야기.

이모는 오늘도 후다닥 바쁘게 움직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빠른 걸음 속에는
지붕 위에 올라갔던 꽃신 한 짝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랑이
조용히 함께 걷고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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