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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카페

11화 엄마, 아빠

명진은 세 살 때 이곳에 왔다.

부모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기억이 없으니까.


그저 어렴풋이 남은 한 장면이 전부였다.

멀어져 가는 사람의 어깨가 하염없이 위아래로 흔들리던 모습.

그게 마지막이었다.


여덟 살 무렵, 명진이는 친동생처럼

아끼던 지연이를 두고

새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떠났다.

그 후로 지연이와 다른 친구들도 하나둘

좋은 부모님을 만나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지연이의 새집은 서울 방학동의 작은 슈퍼를 운영하던 양 씨 부부의 집이었다.

양형만(50세)과 주현주(38세) 부부는 성실하게 일하며,

비록 넉넉하지는 않아도 서로를 아끼는 따뜻한 부부였다.


자연 임신이 어려워 몇 번의 시도 끝에 입양을 결심했고,

그때 그들의 품에 안긴 아이가 바로 황지연이었다.


“여보, 우리에게 행복이 왔어요.

어쩜 저리 귀엽고 예쁜 아이가 우리 품으로 왔을까요.”


부부는 지연이를 지극정성으로 사랑했다.

‘늦게 찾아온 부모’라는 이름이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자랑스러웠다.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까지.

“우리 딸, 이젠 시집보내도 되겠어요.”

흐뭇해하던 부모님을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던 시절이

바로 2년 전 오늘이었다.


그날은 며칠째 비가 내렸다.

온종일 뉴스에서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저지대 주민은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문장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연이네 집은 반지하였다.

비가 오면 늘 습기가 차고, 가끔 물이 새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있기에 행복했다.


하지만 이번 비는 달랐다.

밤낮없이 퍼붓는 폭우가 골목을 잠식했고,

배수구는 이미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거리는 점점 거대한 물결로 변해갔다.


슈퍼는 고지대라 괜찮았지만,

집은 낮은 골목 아래 있었다.


그날, 학교 수업을 마친 지연은

엄마가 구워준 고구마를 먹으며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빗방울이 세차게 유리를 두드리고,

배수구에서는 ‘콸콸’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문밖에서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연아! 빨리 나와야 해! 집이 잠기고 있어!”

엄마는 비옷도 입지 않은 채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순간, 거센 물살이 함께 밀려들며

엄마의 몸을 벽 쪽으로 내던졌다.


“엄마!!”

지연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엄마를 부둥켜안았다.

한순간에 둘은 물속에 잠겼고,

지연은 의식을 잃은 엄마를 안은 채

힘겹게 문 쪽으로 나아갔다.


그때 문 밖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지연아! 여보!”

아버지였다.


슈퍼 문을 닫자마자 불안한 마음에

비를 뚫고 집으로 달려온 것이다.


아버지는 거세게 밀려드는 물속에서

아내와 딸의 팔을 붙잡았다.


“지연아, 손 놓지 마!”

“아빠, 걱정 마세요! 엄마는 제가 지킬게요!”


세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서로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불어난 물살은 그들의 의지를 무참히 삼켰다.


몸은 중심을 잃고,

거대한 물의 힘에 휩쓸려갔다.


“아빠! 엄마!”

지연은 끝까지 엄마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한순간, 손끝에서 따뜻한 온기가 미끄러져 나갔다.


위쪽 골목에서 밀려온 흙탕물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집 안의 물건들과 함께

세 사람의 인생마저 휩쓸려갔다.


의식을 잃은 엄마를 안은 채

지연은 마지막까지 버텼다.

하지만 결국, 거센 물살 속으로

사랑하는 엄마를 보내야만 했다.


쓰레기와 진흙더미 위에서

그녀는 따뜻했던 아버지의 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날 밤,

지연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던 부모님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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