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사람들

25화 살랑살랑 부는 바람

by 뚜르뚜르라이프

탁탁탁닥, 탁닥탁닥—
반복되는 칼과 도마의 리듬.
별부장이 무를 썰며 말했다.
“이제 제법 쌀쌀해졌네.”

앞에서 무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정화가 리듬에 맞춰 손을 놀리며 대답했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해진 것 같아요.
부장님은 가을 좋아하세요?”

“어, 난 응~ 가을 남자지.”
별부장이 웃자 정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에이~ 가을 남자요? 하하하!”

잠시 웃음이 오간 뒤, 별부장이 물었다.
“정화 씨는… 만약 하루를 돌릴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정화는 잠시 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중학생 때요.”

“오, 그땐 왜?”
“그땐 참 많이 옮겨 다녔어요. 서울, 부천, 수원… 친구가 별로 없었죠.
이제는 수원에 정착했지만요.
중학교 때는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일진은 아니고요!”
정화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냥 친구들이 좋아서 몰려다녔어요.

써니 영화처럼 우정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그게 ‘우정’인 줄 알았거든요.”

별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비행소녀였네 어쩐지 포스가 있더라ㅎㅎㅎ

정화의 표정이 서서히 진지해졌다.
“학교에 엄마가 자주 불려 오셨어요.
그때 엄마가 흘린 눈물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철없던 딸 말고 효도하는 딸로 살고 싶어요.”

별부장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번 추석에 가면 되겠네.”
“그럼요, 꼭 갈 거예요. 엄마 아빠 볼 생각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정화의 칼끝이 다시 리듬을 타며~
탁탁탁— 무 써는 소리가 주방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뜨겁던 수증기마저 부드러워지는 계절.
살랑이는 나뭇잎 사이로
무더위는 서서히 멀어져 가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뜨거웠던 주방을 서서히 채워간다.

힘들고 뜨거웠던 한여름도
언젠가 추억으로 남겠지......
그렇게 주방의 하루는
오늘도 칼과도마 리듬 속에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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