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받자~~

휴일에 하루

집이 무지 덥다.
선풍기가 아니라 온풍기가 되어간다.

딸아이가 소리친다.
“아빠, 더워!”
그래, 그럼 시원한 데로 도망가자!

모두 찬성.
일단 배고프면 더 더우니까 고기부터 매기고,
운동 삼아 근처 홈플러스로 피서를 떠났다.

세상 구경, 사람 구경 하며
먹거리도 좀 사고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남는다.

“이참에 각자 하고 싶은 거 해보자.”
각자도생 선언.

딸은 아트박스 구경,
그녀는 옷 구경,
나는 한적한 벤치에 앉아 읽을거리를 뒤적거린다.

한두 시간쯤 지나고 다시 모였다.
표정 보니 슬슬 지루해졌나 보다.
그냥 가긴 아쉬워,
시내 방향으로 핸들을 돌린다.

먼저 오락실에 들러 농구공 넣기 한 판.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다.
우리 둘은 구경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기계가 오래됐는지
돈도 안 들어가고, 공도 안 들어간다.
그녀의 표정이 슬슬 굳는다.

“얼른 나가자.”

그래, 그럼 성심당 팥빙수 한 그릇 가자!
더운 날씨 때문인지 사람이 넘쳐난다.
그나마도 팥빙수는 포장만 된다고 한다.

더위는 지금 당장 식혀야 하는데…
포장만 된다니.

결국 성심당은 포기.
설빙으로 이동.

그 와중에 딸은 다시 도생 선언.
“여기서 데이트하고 있어요. 나 아트박스 갔다 올게요.”

세상에나,
가오점 아트박스도 털고 왔는데
이제 대흥점까지 털러 간단다.

딸내미 방에 물만 부으면
상어 수천 마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망고빙수로 속을 식히고
그녀를 따라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간다.

서점이라… 참 오랜만이다.
요즘은 전자책으로만 보니
서점에 올 일이 별로 없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검색대에서 책을 찾고,
나는 책과 책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구경한다.

걸음이 멈춘 자리,
《꽃삽》이라는 두꺼운 책과
《어이없이 틀리는 우리말》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온다.

가슴에 꼭 안았다.
왠지 이 책들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줄 것 같다.
중고지만 책 상태는 최상.
요즘 말로 개이득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딸이 서점으로 들어온다.
책을 훑더니
“아빠, 이거요!” 하며 책 한 권을 내민다.

그녀는 예쁜 노트 하나를 건넨다.
우리는 모두
알라딘 서점에서 하나씩 설렘과 기쁨을 챙겨 나온다.

그리고, 그녀가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딸과 나에게 청바지 하나, 티셔츠 하나씩
통 크게 선물해 준다.

일단 좋다.
그래, 일단 좋다. 줄 때 받자.
설령, 다시 주더라도.

그런데 딸 손이 무겁다.
아트박스를 잔뜩 털어온 게 틀림없다.
그래도 웃긴다.
이 더위에,
이런 하루면 충분히 개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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