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창밖으로 작은 새들이 날아간다.
하얀 방 안, 정갈하게 정리된 침대 위에 그녀가 누워 있다.
간이 책상 위, 유리병에 꽂힌 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혼자 중얼거린다.
“그때 나도 참 잘 나갔는데…”
부모님은 동네 유지셨다.
어릴 적부터 남부럽지 않게 자라며, 원하는 것은 대부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줄 알았고, 일찍이 발레를 배우며 무대 위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그녀의 삶은 마치 계획된 드라마처럼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소개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젊은 나이에 결혼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발레 학원을 차리고, ‘젊은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며 자신만의 무대를 이어갔다.
그녀를 쏙 빼닮은, 똑똑하고 예쁜 딸도 태어났다.
삶은 언제나 그녀 중심으로 흘렀고, 그녀는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며 삶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사기 사건에 휘말렸고, 그녀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이혼 후 혼자 아이를 키우며 학원을 운영했지만, 그 충격은 마음과 몸을 조금씩 병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남편의 소식을 들었다.
모든 일이 정리되었고, 그는 다시 그녀 곁에 돌아오고 싶어 했다.
“당신을 사랑했기에 떠난 거야. 당신까지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였어.”
그녀는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다시 만났고, 지난 상처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재회를 약속했다.
"이번엔 절대 헤어지지 말자."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를 붙잡았다.
그러나, 다시 1년 후.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골수암’이 찾아온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 암.
그는 병원에 입원했고, 친동생의 골수를 이식받았지만
결국 그녀와 딸을 남겨둔 채 먼 길을 떠났다.
그녀는 다시 무너졌다.
이번엔 너무 깊었다.
슬픔은 절망이 되었고, 절망은 우울이 되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잠이 오지 않아 시작한 와인 한 잔은 이내 두 잔, 세 잔이 되었고
어느새 집안 곳곳에는 술병이 자리했다.
잠시라도 위로가 되어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녀는 알코올을 붙잡았다.
서울에서 일하던 딸이 어느 날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거실이며 안방, 화장실, 주방까지 술병으로 가득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딸은 울면서 이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가족들이 모였다.
모두가 말없이 울었고, 결국 그녀는 알코올중독 전문 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되었다.
“싫어, 나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소리쳤지만, 딸은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예전의 엄마로 돌아가자.
치료 잘 받고, 우리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곳도 가자.
엄마, 다시 행복해지자.”
딸은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 곁으로 내려왔다.
박사 과정 중인 똑똑한 딸은, 엄마의 삶이 회복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녀의 큰 눈은 여전히 아름답다.
지금은 병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그 눈으로 세상의 빛을 담아내기를
가족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내 직장 동료에게 들었다.
그녀는 말한다.
“우리 언니가 다시 희망을 가졌으면 해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글로 써주실 수 있나요?”
나는 오늘, 이 글을 쓴다.
그녀가 다시 피어날 수 있도록.
그녀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새로운 삶을 큰 눈으로 보시길 바라면 이 글을 적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되었습니다 감사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