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에서 발견한 문화차이
(置き配)

2025.11.17 니혼게이자이신문을 읽고

by 낭만팔레트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 2014년 배달의민족 TV광고 카피


자칭 '배달의 민족'인 한국인에게도 '배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음식'이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집 철가방이 배달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때가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배달 가능한 메뉴가 무궁무진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는 동안 집 앞에 배송되어 있는 택배를 확인하는 아침 풍경도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식자재부터 아이들 준비물까지 급할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택배 서비스다.

한 번 누려보면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택배문화가 아닐까?


필요한 물건을 직접 사러 가는 대신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배송시키는 일은 이제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생활 방식이 되었다. 이용하는 사이트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가장 사랑받는 한국의 생활문화'로 택배를 꼽는 데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국에 사는 많은 외국인들도 한국살이의 장점으로 택배의 편리함을 가장 먼저 언급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 일상이,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11월 17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 사설 제목에서 '置き配(오키하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둔다는 의미의 '置く(오쿠)'와 배달을 뜻하는 '配達(하이타츠)'의 합성어이다.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置き配(오키하이)
: 기존 방식처럼 택배를 배달원과 직접 대면하여 전달받는 형태가 아니라, 사전에 지정한 장소(현관 앞, 택배박스 등)에 놓고 가도록 하는 새로운 형태의 배달 서비스.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위 설명에서 묘하게 낯선 느낌을 받을 것이다. 우리에게 '대면 수령'이 필요한 경우는 본인 확인 절차가 필요한 신용카드나 등기우편 정도이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표준운송약관'에는 '대면 수령'이 표준 서비스로 정해져 있다. 물건이 배송된 시점에 당신이 집에 없다면, 대면 가능한 시간을 지정해서 재배달 신청을 해야 한다. 최근 일본 물류업계는 배송량 증가에 재배달까지 더해지며 업무 부담이 커지고 운송업자 부족 문제도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국토교통성은 '置き配'를 기본 규칙에 포함하고, 물품의 도난·파손 등의 문제에 대한 책임 분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물론 일본의 많은 맨션에는 택배 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지만, 용량과 설치 장소에는 한계가 있다. 비대면 배달을 위해 공동현관 출입 비밀번호를 배달원에게 알려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내가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살던 맨션만 해도 상주 관리인의 택배 장부에 직접 사인을 해야만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인의 눈에는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분실 위험이 적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안전성을 갖춘 방식이었다. 다만, 새벽배송에 익숙해진 지금의 나로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번거로움이기도 하다.


일본 사회에서는 역에 설치된 택배전용 라커 활용 등, 배달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 소비자의 편의를 높일 방안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절차를 중시하고 매사에 지나치리만큼 신중한 일본 문화가 이런 분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택배 박스를 가득 실은 배달원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풍경이 일본인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문득 궁금해진다.


택배 하나 비대면으로 받아보는 문제에도 민간과 정부가 매뉴얼을 만드는 '규칙의 나라' 일본. 이들에게도 언젠가 한국식 새벽배송의 시대가 찾아올까?


일본 관용구 중에 「百年早い(백 년은 이르다)」라는 말이 있다. '넌 아직 멀었다'는 뜻으로, 따라잡으려면 100년은 더 걸린다는 맥락에서 쓰는 표현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일본의 택배문화가 배달의 민족 대한민국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100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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