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정해놓는 당신에게
(結論ありき)

2026. 2. 26 요미우리신문을 읽고

by 낭만팔레트

직장인에게 점심 메뉴 고르기는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늘 뭐 먹지?"는 뇌구조에서 빠지지 않는 문구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팀장님이, 어떤 날은 막내가 메뉴를 고른다.


사실 메뉴를 고르기까지가 오래 걸려서 그렇지,

식사시간 자체는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

길어봤자 10분?

맞다. 허무하다.

우린 그 10분의 행복을 위해

때론 두 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고민한다.


그런데 꼭 이런 날이 있다.

팀장님이 "우리 오늘 뭐 먹을까?" 하는데

왠지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 드는 날.


일단 눈치를 보며 이것저것 메뉴를 던져 본다.

"돈가스?"

"에이~오늘 돈가스는 좀 아니지 않나?"

"초밥?"

"아니지.. 오늘은 좀 국물 있는 거 어때?"

"순대국밥?"

"그래 그거 좋겠다. 우리 오늘 거기 가자구!"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그냥 드시고 싶은 걸 말씀하시지, 싶다가도 막상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사르르 녹는 게 사람 마음이다.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게 사람 마음인가보다.

image.png 팀장님 마음 속 영원한 정답, 국밥

이런 식으로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는 상황을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답정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


사실 이러한 '답정너'스러운 상황이

식당 앞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경 너머 일본의 신문에서는

유독 날이 선 채 반복되는 표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바로 結論ありき(케츠론 아리키).


결론을 정해두고 논의를 끼워 맞춘다는 뜻의 이 표현은

한국의 '답정너'와 묘하게 닮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답정너'가

개그 소재에서 비롯되었다면,

일본어의 '結論ありき'

상당히 비판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모습이 보일 때,

일본 언론이 꺼내 드는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이기도 하다.


최근 이 단어가 일본 사설의 단골손님이 된 배경에는

압도적 지지율을 등에 업고

독주를 시작한 다카이치 내각이 있다.


직장에서의 '답정너'는

국밥 한 그릇에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정치판에서의 '結論ありき'는 전혀 무게감이 다르다.


지난 2월 18일 출범한 제2차 다카이치 내각.

중의원에서 자민당이

단독으로 2/3 의석수를 차지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스타트를 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다만, '소비세 감세 실현'이라는

자신의 공약 지키기에 급급하느라

반대 의견을 '잡음'으로 치부해 버리고

불리한 질문에는 '제로 답변'으로 응수하는 등

여야 간에 신중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연일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일본의 소비세는 1989년 3%로 시작해

30여 년에 걸쳐 현재의 10%가 되었다.

아베 전 총리는 8%였던 소비세를

10%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령인구에 치중되어 온 사용처를

육아세대로 전환함으로써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부단히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키즈'로 불리는 다카이치 총리의 최근 행보는

그런 점에서도 역대 내각과 대비되며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비판을 사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재정부담에 관해 논의하는 장으로서 '사회보장 국민회의'를 개최하였지만,

정작 참여한 야당은 소수에 불과했고,

회의시간은 고작 15분이었다.

이래서야 국민 모두의 의견을 반영한 회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소비세는 국가 세수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재원이다.

나이나 수입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부담하기 때문에

경기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특징과 함께

사회보장제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재원인 것이다.


따라서 재원 확보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結論ありき로 소비세 감세를 밀어붙이는

여당 자민당의 최근 행보에

젊은 세대가 먼저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팀장님이 '국물 있는 거 먹자'라고 결론을 내렸을 때,

우리는 이미 '오늘 점심값이 예산을 초과하는지',

'오후 회의에 지장이 없는지' 등을 따져볼 기회를 잃어버린다.


다카이치 내각의 소비세 감세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부담해야 할 세금이 줄어든다며

'감세'라는 국밥 한 그릇을 내미는 손길은 달콤하지만,

정작 그 국밥 값을 누가 어떻게 치를지에 대한 계산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답답함의 기저에 깔려있다.


정치판에서의 '답정너'가 위험한 이유는,

결론 그 자체보다도

논의 과정에서 생략된 수많은 의문들 때문이다.

'돈가스는 어때요?'라고 묻던 그 작은 용기조차 '잡음'으로 치부될 때,

민주주의라는 식탁은 점차 활기를 잃어갈 것이다.


이제 질문을 우리에게로 돌려본다.

오늘 나는 나와 다른 의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혹시 마음속에 이미 답을 정해둔 채

누군가의 작은 용기를 가볍게 무시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가?


일상에서 '結論ありき'가 반복되는 순간,

우리가 침묵하며 외면했던 그 계산서는

결국 언젠가 우리 모두의 몫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점심 메뉴판 앞에서만이라도

기꺼이 나의 의견을 말하고

타인의 취향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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