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체육샘 Jan 11. 2024

접속 그리고 중심(2편)

체육은 몸 중심

오랜만에 수영장을 다녀왔다. 

사우나를 갈 것인가 수영장을 갈 것인가 내적 갈등에서 거리가 가까운 쪽을 택했다.

자유 수영은 가장 안쪽 레인 하나를 사용한다.

옆 레인 상급반 강습이 이뤄지고 있었다. 

상급반 회원들은 이마에 코인을 올리고 배영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저게 어떻게 안 떨어질 수가 있지?

그만큼 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 소리겠지...

중심 즉, 벨런스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수영을 그리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나든 생각이 나든지 할 때 수영장을 간다.

종종 가지만 그래도 수영 실력이 조금씩 늘어 가고 있음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접영이든 배영이든지 간에 영법을 천천히 여유있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느낄 때다. 

다리와 팔을 빨리 저어야만 할 때는 물 안에서 중심이 잘 잡히지 않았다. 

동작을 천천히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물 안에서 중심을 잡아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자전거 타기가 능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시점도 자전거를 천천히 몰 수 있게 되던 때였다.

어떤 동작을 천천히 할 수 있을 때야말로 운동 동작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빨리빨리의 민족이다. 반백년만에 이룩한 경제 성장은 말할 것도 없으며 90년대 초고속 인터넷망도 무서운 속도로 깔아버린 탓에 벌써 인터넷 초강대국이 되었고 그를 기반으로 많은 일들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각종 기술들도 교육에 빨리 적용된다. 

안 그래도 빠른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5년은 더 빨라진듯 하다. 

설 익은 기술들까지 미리 당겨서 교육에 적용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다. 

발전하는 기술에는 문제가 없고 언제가는 잘 활용될 기술인 것 같기는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 얼마나 잘 활용되고 있는가를 보면 여전히 의문이다.


메타버스에 과연 몇 명의 교사와 학생들이 타고 있나? 

AR, VR과 같은 지랄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지 언정 우리의 현재는 아니었고 

교육에 사용할 정도는 더 더욱 아닌 것 같았다.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나 뿐인가.


이렇게 빠르다는 것은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능숙하다면 속도를 늦출 줄 알아야 한다. 

기술에 발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적용 차원에서, 체육 교육의 적용 차원에서 말이다.


교실, 운동장, 체육관은 실리콘벨리가 아니다. 

실험실은 더 더욱 아니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는 기술을 가져다 교육에 섣불리 적용하고 있는 세태가 교육의 중요성을 따져볼 때 옳은 것인가? 

설 익은 기술들을 교육에 빨리 가져다 쓰면 무엇이 좋아지는가?


90년대 PC통신을 시작으로

점점 늘어나고 강해지는 접속들

끊임없는 접속 속에서 우리의 어떤 부분들이 더 나아졌나?


자살률

출산율

이혼율

국민행복도

노인빈곤율


다 꼴찌인데...


과거에도 우리가 현재 쓰지 않는 도구와 기술들을 미래라 칭하면서 

탐해온 결과가 이것이라면 과연 발전하는 기술들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기술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가 기술을 위해 존재하는가?


우리는 새로운 기술(도구)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차있다.

질문의 전환이 필요하다.


바로

이 기술을 교육에 적용하는 목적이 무엇이며 그것이 꼭 필요한가?

이 기술을 사용했을 때 교육에 무엇이 좋아지는가?

로의 전환.

이 부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새롭게 나온 기술들을 빨리 당겨 쓸 생각에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단한 첨단 기술없이도 어떤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굳이 그 기술을 사용하려고 노력해야하는가?


만약 심판이 쉽게 판정할 수 있는 것까지

즉, 매 판정마다 호크아이, VAR같은 비디오 판독 기술을 사용한다면 경기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현재 우리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혹시 경기의 매순간 첨단 비디오 기술을 사용하는 것처럼 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판독 기술이 보조 수단일 뿐인 것처럼 에듀테크 또한 거들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지만

넘쳐나는 접속 환경에 우리가 적응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중독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중심은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가?

운동을 할 때 중심을 잘 잡으려면 자세를 낮춰야 한다.

무게 중심을 낮춰야 한다는 소리다.


이처럼, 설 익은 기술들에 대한 교육적 적용에 일단 눈높이나 기대감을 낮춰야 한다.

기술만 제대로 적용하면 교육이 나아질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

이 기술이 교육의 미래라고 단정짓는 일따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체육은 신체활동이 즉, 몸이 중심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학교 체육도 접속의 시대를 맞이 했으며

esports가 올림픽에 아시안 게임 종목이 되고

Faker가 스포츠 스타로 대우 받는 시대가 되었다.

혼돈의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고 체육이, 더욱이 학교 체육이 몸 중심이라는 초심을 잊어버리면 안 될 것이다.


esports의 체육 교육적 적용? 글쎄...

페이커의 인성과 마음가짐 등이 분명히 교육적이긴 하지만 

페이커는 여전히 Faker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술은 1.0, 2.0,3.0, 4.0 어쨌든 계속 발전하지만

우리 몸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계속 1.0이다.

중심을 잃어버린다면?

몸1.0이 아니라 0.9, 0.8, 0.7...이 될 수도 있다.

결국에 변치않는 우리 몸에 중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몸을 떠나 살 수 없다.


접속을 완전히 끊어버려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기술에 현혹되거나 맹목적으로 활용치 말고

중심을 잡자는 소리다.


그 중심은

접속이 아니라

접촉이다.


2024년은 접속에서 접촉으로 중심을 잡아야 할 때다.







작가의 이전글 접속 그리고 중심(1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