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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속 풍요: 그래도 체육교사다 싶다
우선, 정신이 하나도 없다.
개학 2주 차
뭔 놈의 공문과 각종 계획서는 쏟아지고
확인할 것도
작성해야 할 것도
제출할 것도 쌓여있다.
매일 다 못하고 퇴근하는데
쳐내는 일보다 쏟아지는 일이 더 많다.
교육계획서는 다 써서 냈는데
양식이 바꼈단다.
이래서
‘학교 일은 먼저하면 손해’라는 띵언이 있는 것이다.
평가 계획은 제출하려고 보니 틀린 게 보인다.
고치다가 퇴근. 내일 합시다.
날은 꽤 따뜻해져
퇴근길 버스에서 겉옷을 벗었다.
그런데 목에 호각이 걸려있다.
내 노란색 호각.
오늘 컴퓨터 화면과 출력 문서들 앞에서 느낀 공허함
그 빈곤을
잠시 잊고
불어서 충만했던 시간
그 풍요를
잠시 상기시켜준 건
오늘 내 목에 걸린 호각이다.
돌아보니 오늘 학생 L에게 이런 말도 들었다.
선생님 호각소리 오랜만에 들으니까
엄청 반가웠어요!
목에 걸린 호각.
학생의 말.
이 두 가지가 섞여 나를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