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 : 아껴서 응가되었다.]

비움의 미학

by 덜깬잠꾼

같은 것을 나중에 또 보겠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시간도 없고 식상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들이 너무 많다.

책이 대표적이다.

다시 찾지 않는 시간만큼 먼지만 수북하다.

어떤 책은 나중에 봐야지 하고 사놓았다가 책장에 산 채로 죽어있다.(사 왔던 그대로 꽂혀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젊어서 삼국지를 읽을 때 하고 나이가 들어 읽을 때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언젠가 그 다른 느낌을 알아보겠다고 이사할 때마다 무겁게 들고 다녔다.

이사 간 집이 좁을 때에는 박스채 창고에 방치되기도 해서 흐른 세월만큼 종이만 누렇다.


나중에 입겠다고 옷장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옷과 같은 신세다.

버리지 못한 옷은 선택에서 밀려나고 항상 새 옷이 몸에 걸쳐진다.

옷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오래된 책을 찾지 않는 이유가 새 책을 샀기 때문이 아니다.

게을러서거나 책 보다 짧으면서도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 서다.


느낌이라는 것도 연식에 따라 다르기보다는 기분에 더 좌우된다.

타인이 말하는 느낌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멜랑꼴리 한데 밝게 보일리가 없다.

처져 있는데 활기차게 읽히지 않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

밤에 썼던 수많은 아름다운 글자들도 아침에 보면 낯부끄럽다.

비 오는 날 청양고추를 넣은 호박전이 더 땡기는 것과 같은 논리다.


지금 하지 못한 것을 나중에 하겠단다.

자기기만이다.

그러지 말자

남자는 버리기로 했다.

겨울철 몸에 걸쳐진 두꺼운 옷처럼 부자연스러운 것들을 하나씩 버리기로 했다.

헉! 분리수거가 어제였단다.

일주일을 더 보관할 수밖에 없다.

뜻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다.

박혀있는 것을 꺼내놨더니 집이 좁아졌다.

다시 보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25.11.28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