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수리 마수리]

계획의 반론

by 덜깬잠꾼

년 초가 되면 계획을 세운다.

계획이 곧 1년 농사라고 잘해야 한다고 해서 나름 이것저것 따져가며 꼼꼼하게 세웠다.

누군가 남자의 계획을 보고 이야기한다.

그건 계획이라 하기에는 너무 시덥지 않다고 한다.

그냥 놀아도 그 정도 결과는 나온다고 한다.

정작 남자에게는 뼈 빠지게 노력해도 이루기 힘든 것인데도 말이다.


그때부터 인가보다.

남자가 세운 계획은 항상 하늘의 별따기였다.

죽어라 달려가서 항상 그 정도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무지개였다.


일 년이란 도화지에 한 달을 그리고 한 주를 꽉 채운다.

채워진 조각들이 하도 많아서 아무리 꺼내도 줄어들지 않는다.

여름쯤이면 꺼낸 것보다 미루어진 것들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가을이면 당연히 추수를 해야 하는데 설 익을 단감처럼 미뤄진 계획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까치밥으로 쓰기엔 너무 많이 남았다.


한 해의 끝에 섰다.

열심히 살았노라고 자부했지만 결과가 그닥 좋지 않다.

계획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에 실망하고 내년에는 더 잘해야지 하는 반성만 남는다.


계획이란 것이 그렇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것들이었는데 달력에 적는 순간 꼭 해야만 되는 일로 바뀐다.

좋은 날도 달력 속 기념일로 박제되면 꼭 챙겨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사람 심리가 좋아하던 것도 일이 되면 청개구리마냥 하기가 싫어진다.


기록에 남은 계획을 억지로 지운다.

해야만 하는 일을 좋아하는 일로 바뀌는 자기기만의 마법을 펼친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이 아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그런 날을 만든다.


문제는 요즘 남자의 기억력이 영 시원치 않다.

지워버린 계획이 생각이 안 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그닥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계획 속 해야 할 일을 안 해도 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또 다른 마법을 펼치면 된다.


분명 오늘 안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머리를 쥐어짜 보지만 생각이 나질 않는다.

머릿속이 하얗다.

그나마 티가 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세상도 첫눈으로 온통 하얗게 뒤덮여 속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남자가 눈을 기다린 이유다.

2025.12. 05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