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맞은 날]

익숙함에 젖다

by 덜깬잠꾼

상사가 퇴근하다 말고 갑자기 밥이나 먹자고 할 때가 많았다.

선약이 있거나 늦게까지 다른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억지로 끌려나갔다.

그 시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이자 국룰이었다.

계획적으로 살아야 겨우 살아남는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남자는 그런 번개가 반갑지 만은 않았다.

남자에게 번개는 만원 지하철에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땀내 나는 타인과 같았다.


선약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번개는 상상하기 힘들다.

재수 없이 벼락 맞아 죽기도 하지만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누군가의 이름을 새긴 멋진 도장으로 남기도 한다.

"모"아니면 "도"가 될 수도 있지만 "개"일 수도 있고 "걸"일 수도 있다.


아직도 여전히 번개는 달갑지 않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갑작스러운 것이 영 꺼림칙하다.

다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게 번개를 맞을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는 선택권이 있다.

게다가 번개를 만들어도 되고 피해도 되고 심지어는 맞아도 된다.

굳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고 좋아라 하는 콜라를 마셔도 된다.

그래서인지 꽉 찬 일정으로 가득 찼던 과거보다는 빈 공란이 더 많은 지금 어쩌면 번개를 찾기도 한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목에 가시가 돋친 다는 분이 있었다.

산책을 하는 것을 보고 몇 시 인지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할 수 있게 습관화하는 것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정해진 것을 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더 큰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동물원의 사자처럼 꽉 짜여진 틀에 갇혀 사는 것이 편해졌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편안함에 젖어 야생에 나갈 용기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가정식 백반이 익숙하지만 꼭 맛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맛난 것을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는다.

"모"는 아니지만 "윷"일 수도 있는데 윷놀이를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


번개가 치질 않는다.

의외성이 거부되는 시대다.

불편함을 굳이 하지 않는 시대다.

남들이 좋아하는 맛집을 가고 그들이 좋다고 하는 여행을 간다.

그렇게 남자는 그들과 같은 쳇바퀴를 다.

서로 만나지 않을 뿐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음 먹는다.


번개를 맞을 용기를 내 본다.

번개를 피하려 세워놓은 피뢰침이 너무 많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

이것 때문에 힘들고 저것 때문에 어렵단다.

핑계 없는 귀신은 없다.

역시 번개는 아무나 맞는 게 아니다.

가정식 백반이 최고인 이유다.

2026.01.16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