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찾는 여정
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좀 나았다.
시험을 언제보고 시험 범위는 어디에서 어디까지 알려준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까지 뭘 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놀다가도 때가 되면 벼락치기라도 했다.
답이 정해진 문제지를 받았다.
틀리든지 맞는지 둘 중 하나다.
몰라도 사지선다라면 찍으면 되었다.
연필을 잘 굴리거나 머리 써서 앞의 문제들에서 덜 나온 번호를 찍기도 했다.
주관식으로 나온 수학문제는 "0" 아니면 "1"을 적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답은 존재했고 틀리면 "다음 기회에"로 미루면 되었다.
머리가 좀 크고 나서는 문제가 조금 달랐다.
단답형 주관식이 아니라 서술형 주관식이다.
설사 답이 틀려도 푸는 과정이 맞으면 점수를 받았고 정답이어도 과정이 틀리면 만점이 아닌 문제를 풀었다.
벼락치기로는 힘든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이때가지는 그래도 답안지는 채우는 것이 미덕이었다.
글씨라도 이쁘게 쓰는 정성이라도 보이면 점수를 받는 낭만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 때부터 시험도 힘들어진다.
기계적으로 답을 적었던 시대가 사라졌다.
정답이면 점수를 받고 오답이면 감점을 받는다.
정답 다섯 개에 오답 다섯 개면 빵점이 되는 시스템이다.
모르면서 아는 체하면 못 사는 세상이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의 시대다.
운칠기삼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로또가 없는 험한 세상이 되었다.
컴퓨터가 나오고 시험은 더 힘들다.
화면의 문제를 풀어야 다음 문제를 풀 수 있다.
다음 문제가 쉽다면 앞 문제를 틀린 것이다.
갈수록 문제가 어렵다는 것은 더 높은 점수의 문제를 풀고 있다는 반증이다.
난이도가 계속 높아지다 어느 시점에서 정답과 오답을 반복하면 그 난이도가 점수가 된다.
풀었던 문제의 개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몇 점짜리 문제를 푸느냐가 관건이다.
여기까지가 살아오면서 돈을 내고 봤던 시험들이다.
정해진 답이 있고 정답만큼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시험들이다.
진인사 대천명을 기대할 수 있었고, 개천에서 용도 나오고 이무기도 나오기도 하는 세상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돈을 받으며 문제를 푼다.
풀긴 푸는데 갈피를 잡지 못한다.
답인 것 같은데 아니란다.
해도 안되는 놈은 안된다.
답이 아닌 것 같은데 답이란다.
찍는 걸로 살아남음을 증명한다.
이런 날은 남은 운으로 로또를 산다.
이 사람은 맞았다고 하는데, 저 사람에게는 틀렸단다.
오늘의 정답이 내일은 오답이 되기도 한다.
결정장애가 있는 나에게는 객관식 문제가 주관식문제보다 어렵다.
문제를 푸는 시간보다 출제자의 의도는 찾는데 시간이 더 많이 쓴다.
문제가 틀린 것이 아닌가 하며 문제를 고치려고 발버둥도 친다.
문제는 문제인데 문제가 뭔지 모르겠다.
오늘도 답을 못 내고 하루가 간다.
"다음 기회에"는 "꽝"이 아니길...
2026. 01.23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