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언어
말이 메말라있다.
아나운서들은 혹시나 모를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감정을 빼고 사실만을 전달하려고 한다.
표준어를 써야 하고 슬픈 뉴스에 울지 못하고 아파 뉴스에 티도 못 낸다.
사실을 전달한다는 미명하에 기계적 중립이랍시고 정작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텍스트로 된 뉴스를 감정 없이 읽어내기만 하면 된다.
방송국 혹은 데스크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수랍시고 중립이라고만 톤도 없이 떠들어 댄다.
어떤 면에서 보면 AI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직업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에는 감정이 실려야 한다.
사람은 신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다.
화가 나면 소리가 커질수도 있고 감정이 격해지면... 동물들이 뛰어다닐 수도 있다.
감정 없는 기계음으로는 톤도 일정하게 사실을 이야기하면 제대로 공감이 되질 않는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내고 슬프면 울면 되는데 ... ...
이렇게 하자고 하면 시대정신을 역행하는 꼰대로 치부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말씀하셨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 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하니아 ... ..."
당장의 심정을 다른 나라 글자로는 표현을 다 할 수가 없다.
세종대왕님도 그게 되지 않아 답답해서 한글을 만들었을 것이다.
미국 욕을 글로 보면 해석해야 할 영어 단어일 뿐이지 욕으로는 안 들린다.
낭랑 열여덟 살이나 개나 소가 뛰어다니는 말을 들으면 말하는 사람의 심정을 십분 이해가 된다.
"通"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서로 通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반대로는 통로로 가는 길을 차단당했다.
하고 싶은 말을 가려서 하란다.
불만을, 심지어는 분노마저도 기계적 중립적인 언어를 쓰란다.
말이 안 되는 말을 말로 하려니 화병만 도진다.
"通"을 해야 하는데 "不通"된 언어로 "通"을 하려니 논리도 없고 억지스럽기 그지없다.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만든 이유를 되새긴다.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
내 이랄 윙하야 여엿비너겨 새로 스믈 여들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뻔한킈 하고져 할따라미니라."
몰개성을 강요받는 시대다.
날마다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만든 글씨인데 쓰지 말란다.
세종대왕님의 한글 창제 의지에 반한다.
한글을 반포할 당시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것만큼이나
오늘 한글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쓰는 것 역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입에 착 달라붙는 그런 맛깔난 언어를 소비하지 않은지 오래다.
운동장이 너무 기울였는데 정제된 언어로 표현이 안된다.
하루라도 입에 달라붙는 언어로 소리치고 싶다.
돌아가신 김수미 님이 그립다.
악따구니가 대접받는 시대.
누군가 대놓고 욕을 하면 슈퍼챗이 쏟아지는 세상.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부러 찾아다니는 일상을 살아간다.
욕도 돈이 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말들이 쏟아진다.
차 올린 말들이 시지프스도 아닌데 새로운 말을 더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속이 뻥 뚤릴 때까지 차고 또 차올린다.
이렇게라도 살아가야 하는 오늘을 살아낸다.
세종대왕님의 답답함이 가지실 않는다.
2026.01.23 덜깬잠꾼